모멸의 자격, 존엄의 자격 - 영화 '기생충'을 보고
[ 크리스찬영화보기 ]
작성 : 2019년 06월 12일(수) 10:00 가+가-
기택(송강호)을 두고 박 사장(이선균)이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할 때, 기택이 자신의 냄새를 맡는 것처럼, 관객들은 자연스레 자신에게 어떤 냄새가 나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지하철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순간, 대다수의 관객은 자신이 어디에 이입할 지를 안다."(네이버 ID '리오')

영화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기념적인 해에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선물 같은 영화다. '반지하' 등과 같은 한국적인 소재를 통해 양극화와 계급 갈등이라는 보편적 이슈를 다루면서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사회적 메시지를 영화 안에서 잘 녹여내면서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를 잡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영화는 박 사장과 연교(이선균·조여정)의 가정, 그리고 기택과 충숙(송강호·장혜진)의 가정을 대비시킨다. 계단이나 폭우 등 다양한 수직적 상징들을 두 가족의 상황에서 대조적으로 사용하면서 계급의 차이와 갈등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박 사장의 집에서 운치 있게 내리는 비가 기태의 집에서는 가슴팍까지 차올라 생존을 위협하는 재해가 되고, 해외 직배송한 고급 장난감 텐트는 방수 처리가 되어 비에 젖지 않지만, 반지하에 사는 동네 주민들은 살림살이가 물에 잠겨 그나마 쓸 수 있는 것 하나라도 건지려 폭우를 맞으며 갖은 애를 쓴다. 두 가족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기택은 박 사장의 운전수이다. 기택은 박 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수 없다. 고용주(雇用主)와 고용인(雇傭人)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여느 갑을 관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택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선을 넘고 만다. 바로 박 사장이 근세(박명훈)의 몸을 대하며 경멸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이다. 박 사장은 근세가 오랜 시간 지하실에서 머물면서 몸에 베인 지독한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근세가 자신을 '리스펙트'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근세는 죽은 이후에도 한 인간이 아니라 모멸의 대상이었다. 기택은 근세에게 자신을 이입하면서 이성의 끈을 놓고, 딸까지 잊어버린 채 박 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분노로 변한 수치의 칼날을 휘두르게 된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모멸감'이라는 책에서 모멸이란 감정을 개인의 심리나 일상의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 지평에서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멸이란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코 다른 사람을 낮춰 보거나 하찮게 봄으로써 그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이며, 반대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격하될 때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을 모멸할 기준이 되는가?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줄 자격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모든 것이 돈으로 수렴되는 사회는 사람의 가치 역시 돈으로 환산되곤 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급을 나누고 가치를 매긴다. 위계화시키고 존재마저 서열화한다. 누군가에게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만들고 누군가는 관계를 비인간화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마땅히 그 존엄을 존중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제외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전 12; 갈 3:26, 28).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 사회적으로 멸시 당하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죄인들의 편이 되어 주셨는데 그리스도인은 어떤 냄새가 나는 사람의 편에 설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낸다는 것(고후 2:14~15)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지점이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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