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 흔적을찾아서 ]
작성 : 2019년 06월 10일(월) 08:18 가+가-
4.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 사건

'노근리사건'현장 '쌍굴다리'앞에서 필자(오른쪽)에게 절규하는 정구도 이사장(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저 무수한 흔적들은 미군의 집단학살 증거입니다!"

정구도 이사장과 양친. 부친 정은용 위원장(노근리미군양민학살대책위원회)은 2014년 별세(당시 91세), 모친 박선용(94세)권사는 현재 대전에 거주하고 있다.
2016년 11월, 미국장로교회(PCUSA) 대표단은 '노근리사건' 현장 '쌍굴다리'를 찾아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했으며, 한국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화해와 치유를위한 합동추모예배를 드렸다.
그날, '흔적을찾아서' 떠나는 취재길엔 넥타이를 맸다. 노타이 차림으론 그 엄청난 '흔적' 앞에 나설 수 없겠다 싶었다. 더욱이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바로 그날 아닌가. 멀리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까지 참배 온다고 했다. 새벽 첫차여서 그랬을까? 영동으로 향하는 무궁화호는 역시 한산했고, 혜산(兮山) 박두진의 글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젊은 시절 그가 소향(素鄕) 이상로에게 보낸 편지의 글 '영동을 지나며' 한 대목이 기억되는 것이었다.

(전략)차는 황간에서 벌써 영동에 왔습니다. 차 안에는 불과 8, 9인이 있을 뿐, 거진 반 빈 것 같게 한적합니다. 바깥 풍경이 매우 화창하여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 벌을 지나면 저기 남향받이 산기슭 그 다소곳한 마을에 복사꽃 오오 화안한 그 복사꽃 피리니…

그렇다, 영동은 예나 이제나 역시 남향받이 산기슭 다소곳 복사꽃 피어나는 화안한 마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를 지은 정지용의 고향땅 아니런가.



#노근리사건 vs 쌍굴다리의 전설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 그는 말 없이 필자를 쌍굴다리로 이끈다. 그리고 거기 콘크리트 벽에 그려진 하얀 동그라미 속 깊이 파인 흔적들, 그 흔적 앞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우릴 불 속에서 건지려고/ 이 땅에 그대 다시 올라왔지/ 그런데 그런데 그대/ 어찌하여 사슴 같은 우리 백성들/ 양 같은 그들을 그리도 무참히 해쳤는가/ 호소하는 지하의 핏소리/ 그대 귀에 아니 들리는가.

그가 들려준 '노근리사건'의 영문표기(No Gun Ri Case)는 '무총리사건'(無銃里事件), '총 없는 마을 이야기'- 얼마나 서정적이런가. 아이러니(irony)다. 사건의 발단은 1950년, 6.25전쟁으로부터 비롯된다. 69년 세월이 흘렀다. 감히 '쌍굴다리의 전설'이라 칭한다. 전설(legend) 아니고서야 어찌 이리도 비통한 사건이 이토록 아름다운 땅, 착한 민초들 속에서 현실(reality)로 벌어질 수 있었단 말이더냐.

-노근리사건개요(노근리미군양민학살사건대책위원회 & 영동군 발표)

사건발생일자 & 주체: 1950. 7. 26~7. 29(4일간)/미군 제1기병사단
사건장소 & 과정: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철로 일대(서울기점 225Km 지점/쌍굴다리)
1)1950. 7. 25 저녁: 영동읍 일대 피난민 500~600명(임계리+주곡리+타지역주민)미군이 피난유도
2)1950. 7. 26 오후 3시경: 미군전투기 황간면 노근리 부근 철로변 피난민을 향해 무차별 폭격
3)1950. 7. 26~29: 노근리 개근철교(쌍굴다리)에 피신한 피난민 향해 미군이 무차별 기관총 사격


#아버지와 아들

전설의 주인공은 정구도 이사장의 선친 정은용 노근리미군양민학살대책위원장(2014년 91세 별세). 실명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집필, '노근리사건'을 역사 무대에 올려놓은 장본인. 적(赤)과 흑(黑)으로 장정된 범상찮은 책을 펼쳐 들면서 필자는 저자의 집필노트에 마음이 꽂혔다.

이 끔찍한 사건은 44년 동안이나 역사의 뒤안길에 감추어져 왔습니다. 수많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있었지만, 가해자의 나라인 미국에나 우리 정부에조차 이 일을 감히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 역시 이 노근리사건으로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잃은 아픔을 가슴 깊이 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어느덧 내 나이 고희를 넘어섰습니다. 내가 지금 세상에 알리지 아니하면 이 사건이 영영 역사 속에 묻혀버릴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노근리사건을 붙들고 평생동지요 조력자로 헌신한 아들 정구도의 증언이 이어진다.

1991년의 어느 봄날, 저는 교자 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아버지의 원고를 읽게 됐습니다. 그 원고 속에 나타난 가해 미군의 잔학한 행위에 경악했고, 분노했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원에서 경영학 코스를 마치고 박사학위논문을 써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논문보다 부친의 작업을 도와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결단했습니다.

1994년 6월, 정씨 부자는 즉시 '노근리미군양민학살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피해자들마저 참여를 기피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 했다. 겨우 5명으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아버지는 위원장, 아들은 대변인, 초라한 출발이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이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라 했다. 그랬다. 서울 소재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했지만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문전박대! 외로운 싸움의 시작이었다. 대책위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국회의장 및 각 정당대표, 그리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 및 상하원 의장 앞으로 계속해서, 줄기차게, 진정서를 보냈다. 종무소식이었다. 우리 청와대는 국방부로 넘겼고, 국방부는 미 8군으로 이첩, 그리고는 끝이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노근리사건 AP특별취재팀 퓰리처상 수상

그러나 정씨 부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증거자료 수집에 나섰다.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이 보유한 결정적 문헌자료를 입수했다. 놀랍게도 이는 미 국방부가 인민군으로부터 노획한 문서였던 것. 미 국방부의 작전기밀문서도 입수했다.

1)1950년 8월 19일자 조선인민보: '노근리에서 미군에 의한 양민 400명 학살 6단 보도기사'
2)미군 제1기갑사단 제8기갑연대 통신일지(1950년 7월 24일):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라. 전선을 넘으려는 자들은 모두 사살하라. 어린이와 여자는 신중을 기하라'
3)미군 제25보병사단장 윌리엄킨(William B. Kean) 명령서(1950년 7월 27일):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

정씨 부자는 수집된 각종 최신 자료들을 국내외 언론기관에 배포, 노근리사건의 진상을 폭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시사저널'과 '월간 말'의 심층보도를 비롯, 미국CNN '월드리포트', MBC '시사매거진2580' 등 깊이 있는 보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8년 4월, AP통신 서울지국 최상훈 기자를 통한 미국 본사 특별취재팀의 노근리사건 현장취재를 비롯, 참전 미군의 증언 채록, 각종 기밀문서 발굴 등을 통해 비중 있는 보도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이에 자극,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CNN, NBC 등 미국 메이저 신문과 통신, 방송이 앞다퉈 일제히 노근리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AP통신 노근리사건특별취재보도팀에게 퓰리처상 수상의 영예가 안겨지는 낭보가 세상을 깨웠다. 미국과 한국 두 나라가, 아니 세계가 경악했다. 노근리가 갑자기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는 '예언'이었던 것일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유감표명과 노근리특별법 제정

노근리사건은 한·미양국의 관심사를 넘어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부담을 느낀 한·미 양국은 1999년 10월 초, 노근리사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노근리사건의 실존은 인정하되 사격명령의 고의성은 인정하지 않는 선에서 조사를 매듭지어 버렸다. 그리고 노근리사건 발생 50년만인 2001년 1월 12일 한·미 양국은 1년 3개월간의 공동조사를 마치면서 클린턴 미국대통령 명의로 노근리사건 피해자와 한국 국민에게 성명서를 발표했다.

나는 미합중국을 대표하여 1950년 7월 하순 노근리에서 목숨을 잃은 대한민국 민간인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On behalf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 deeply regret that Korean civilians lost their lives at No Gun Ri in late July, 1950.)

쌍굴다리 콘크리트 벽에 알알이 새겨진 흔적 앞에서 토해내는 정구도 이사장의 절규를 경청한다.

저 무수한 흔적들은 선량한 우리 가족들과 무고한 주민들을 향해 미군이 무차별 퍼부어댄 총탄 자국입니다. 학살의 증거입니다. 비록 미국 대통령의 '깊은 유감'(deeply regret) 표명이 있었고, 여러가지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방적이요, 불합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단 1달러도 미국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미국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하고, 반드시 공식적 사과(official apology)와 온전한 보상(complete compensation)을 해야 합니다.

2002년 10월, 정은용 유족회장은 대한민국 국회의장 앞으로 '노근리진상 재조사와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는 청원서를 제출, 2004년 2월 9일 노근리사건 희생자의 진위 여부를 심사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그 법에 따른 합법적인 심의 결과 노근리사건 희생자 및 피해자 또한 확정됐다. 당연지사(當然之事) 만시지탄(晩時之歎)이며 오호(嗚呼)애재(哀哉)오호(嗚呼)통재(痛哉)로다!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자 63명/ 유족 2,240명



#미국장로교회(PCUSA) 대표단 사과 방문과 6.25전쟁 70주년 워싱턴 행사

2016년 6월 25일, 미국장로교회(PCUSA) 제222차 총회 결의에 따라 그 해 11월 2일, 서기 허버트 넬슨 목사(Rev. Herbert Nelson) 등 대표단 17명이 노근리사건 현장인 쌍굴다리를 찾아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대표단 일행은 추모탑 헌화, 기념식수 등 행사와 함께 화해와 치유를 위한 합동 추모예배를 드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의 논평을 경청한다.

제가 예장 통합 총회 사무총장 재임시 미국장로교회(PCUSA) 제222차 총회에 참석, 노근리사건에 관한 결의에 동참한 바 있는데, 금번 대표단의 사과 방문이 실현돼 그나마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인류보편핵심주제인 인권과 평화를 위한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의 괄목할만한 국내외 활동에 경외의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협력체제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2020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상당히 의미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의 부연설명을 듣는다.

저희는 국내외 다양한 기관과 언론매체의 도움을 힘입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만, 특별히 한국교회의 기도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목동 소재 평광교회(조성욱 목사 시무) 안수집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만, 호국의 달을 맞아 노근리사건 피해자를 위한 특별기도회에 고마운 마음입니다. 또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지속적인 지원과 협력에 감사하거니와 특별히 내년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세가지 프로젝트를 노근리사건 가해국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개최하고자 함께 추진 중에 있습니다. 기대해 주시고 각별한 기도와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쌍굴다리vs 통곡의벽

'흔적을 찾아서' 하룻길 취재를 마치고 무궁화호 황혼열차에 올라 영동을 떠나는 필자의 마음 속엔 쌍굴다리의 처연한 흔적들이 종내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쌍굴다리가 마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으로 각인되는 것이었다. 그 통곡의 벽에 새겨진 무수한 흔적들, 그 흔적들 속에 서려있는 원혼(寃魂)들을 향하여, 그리고 아직도 찢긴 채 6.25전쟁 70주년을 맞게 되는 한반도의 남과 북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내 작은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것이다. '영동을 떠나며' 황혼 비낀 하늘에 삼가 나의 마음 모아 비옵나니, 주여, 구약성서 호세아의 '탄식(歎息)의 노래'를 '해원(解寃)의 노래'로 승화(昇華)시키고 싶은 이 내 마음, 주여, 이 마음 어이할꼬!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6:1). 아멘!

고무송

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전 본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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