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에서 통일한국을 꿈꾼다
작성 : 2019년 06월 04일(화) 16:54 가+가-

베를린에서 평화열차를 탑승하기 전 참가자들의 모습.

독일에서 사역하는 필자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앞서 분단을 극복한 통일독일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3년 가을이었다. WCC부산총회를 한 달 앞두고 진행된 '평화열차(PeaceTrain)' 행사에 일주일간 참여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분단과 화해의 상징인 베를린에서부터 모스코바와 평양을 거쳐 총회장소인 부산까지 가는 프로젝트였다. 막판까지 시도했던 북한통과는 불가능하게 되어 아쉬움이 컸고, 필자는 일부 일행들과 모스코바까지 일주일의 여정만 참가하였다. 참석자들이 함께 베를린장벽을 직접 보며 관계자들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장벽을 뛰어넘다 사실당한 이들을 기념하는 화해교회의 정오기도회에 참여하였다.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한국교회와 독일교회의 연합기도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2년 전 일이다. 5월 8일은 우리에게 어버이날이지만, 이곳 독일과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이다. 이긴 쪽에서는 '전승기념일'로, 패전한 쪽에서는 '종전기념일'로 지킨다. 이 날 슈투트가르트 프리덴스교회에서 외부 단체가 주관한 기념일 행사가 있었다. 이 때 한국인 목사로서 인사말을 부탁받아 참여하였다. 월요일 저녁이라 30~40명 정도 참여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예배당이 꽉 차있었다. 독일인들만 천명은 모인 듯했다. 마침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우리나라가 사드갈등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전범국이 아니었음에도 일본군을 무장해제하는 과정에서 남북으로 갈리게 되었다. 모든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는 없다. 서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기에 모두 패자일 뿐이다. 그래서 전쟁이 없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독일어로 간단히 소개한 뒤 한국어로 마음을 담아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하여 통일, 통일이여 오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모두가 쥐 죽은 듯이 듣고 난 후에 힘차게 박수를 쳤다.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통일을 주신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평화와 통일을 주시기를 기도한다"는 말로 마쳤다. 일부 사람들이 피식 웃었다. 통일과 하나님은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필자도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많은 청중들이 왜 왔는지 나중에야 알았다. 안내지 겉장에 등장하는 콘스탄틴 베커라는 유명한 가수 때문이었다. 행사의 마지막 부분은 그의 노래들로 한참을 이어가며 마무리되었다.

필자 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석했던 아들이 돌아올 때 차안에서 말했다. "아빠, 앞으로 이런 데는 오지 말아요." 아들도 불편함을 느낀 모양이다. 하지만 말을 되받았다. "아들, 이럴수록 더욱 아빠라도 참석해서 당당하게 말해야 해!" 다음 주일에 그 자리에 참석했던 프리덴스교인들 중 몇 사람은 두고두고 인사말과 노래가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해주었다.

1980년 가을 동독에서 청소년들 중심으로 군비확장에 반대하는 평화기도회가 열흘간 열렸다. 참회와 간구의 날들이었다. 다음해부터 평화기도회는 연례행사가 되었고, 1982년부터 라이프찌히의 니콜라이교회에서 평화를 위한 월요기도회가 시작되었다. 이 기도회는 1989년 10월 9일, 7만명이 동참한 평화거리시위로 이어졌다. 한 달 뒤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다음해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간절함으로 오랜 세월 기도를 쌓아가는 우리에게도 응답해주실 줄 믿는다. 필자는 오늘도 통일독일에서 통일한국을 꿈꾼다.

김태준 목사/독일남부지방한인교회담임목사,총회파송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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