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의 비유
(마가 4:3-8)
작성 : 2019년 06월 07일(금) 00:00 가+가-
이 비유는 해석(막 4:13~20)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씨의 비유', '밭의 비유'로 다양하게 이해되고 있다. 먼저 지적할 것은 이 해석 부분은 후대 교회의 알레고리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을 예수의 입에 담은 것이다. 마가 4장은 13장(소묵시록)과 더불어 마가복음에서 유일하게 확대된 가르침(discourse)에 속한 부분으로 가르침이라는 모티프는 도입부에서 세 번이나 등장한다(4:1~2). 마가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따로 가르치셨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마가는 비유의 해석을 마가복음의 주요 묵시문학적 모티프가 되는 비밀 모티프(7:17~22, 9:28~29, 13:3~27)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있다. 묵시문학의 기본 요소는 선택 받은 자, 비밀스러운 공동체, 그것의 삶의 세계 등이다. 선택 받은 자들에게 있어서 그 나라(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고대된 사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현재적 실제로서 성장과 투쟁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 나라는 성장 현상, 특별히 성장과 산출 과정의 씨앗 및 식물에 비유되고 있다. 씨의 성장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 유혹하는 세상의 가치들, 거짓 교훈들, 외부의 반대 세력 및 이단들은 그 기원에 있어서 악마적이고(3:24, 4:15), 그 차원에 있어서는 우주적이다(13:8). 마가는 이 비유를 비유 중의 비유로 이해하면서 나머지 비유를 이해하는 열쇠로 간주한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4:13)

이 비유는 공관복음서와 도마복음서에 나타난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도마복음과 누가복음은 개별적 전승을 반영하는 것 같다. 비유는 씨를 뿌림과 세 번의 실패와 한 번의 결실을 언급한다. 처음 세 번의 씨를 뿌림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각각 씨에 대한 언급과 그 씨가 직면하게 되는 정황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이 전개되고, 그 씨가 결실치 못하는 결말이 난다. 길가에 떨어진 첫 번째 씨는 성장하지도 못하고 새가 와서 먹어 버렸고, 돌짝밭에 떨어진 두 번째 씨는 '곧 싹이 났지만(5)' 태양의 열기에 타서 말라 버렸고, 세 번째 씨는 어느 정도 자랐지만 가시에 의해 끝내 결실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점층적 전개는 씨가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마지막 결과를 예상케 한다.

돌짝밭에 떨어진 씨에 대해서 마가의 '흙이 많지 않아'와 '뿌리가 없어서'라는 표현 사이에 '해가 뜨면'이라는 표현은 마가의 공동체가 처한 정황을 반영하는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며 곧 걸려 넘어진다"라는 해석과 일치한다. 마침내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진다. 마가복음만이 '싹이 나고 자라서'라는 표현을 담고 있다. 자라서 열매를 맺은 수확의 양은 각각의 책마다 다르다. 누가복음은 단순히 100배라고 언급하고, 도마복음은 둘로 구성된 표현(60배와 120배)을, 마가복음은 셋으로 구성된 표현(30배, 60배, 100배)을 갖는다. 누가복음은 확연한 결말을, 도마복음은 수학적 대칭을 보여주지만, 마가복음은 대칭과 논리적 결말이 부족한 점을 보인다. 따라서 마가복음의 표현이 본래적인 것 같다.

이 비유에 대한 전통적인 제목인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사람이 즉각 사라져 버리고 이야기 전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비유의 요점을 비켜간다. 따라서 비유를 이해함에 있어 사람이 행한 파종의 방법에 대한 논란 역시 비유의 요점을 비켜간다고 할 수 있다. 비유의 초점은 씨를 뿌리는 자와 그 파종과 써래질의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비유는 씨와 씨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세 번의 실패에 이어 씨는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30배, 60배, 100배에 이르는 열매의 수확은 모든 인간의 측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풍성한 수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예레미아스). 하지만 당시의 증거는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의 수확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그 씨가 거둔 수확은 일상적으로 기대되는 좋은 수확에 해당된다.

비유는 단지 농사의 일상적 과정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비유는 실패와 성공의 일상성을 이야기한다. 실패와 성공은 밭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씨가 밭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씨의 운명은 공평치 못하다. 아니 불공평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로 이러한 씨의 운명처럼 불공평한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세상의 지혜는 "세상은 공평하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예수의 비유는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이야기 한다. '세상은 공평치 않다고' '나의 성공은 다른 이들의 희생을 통해 이룩된 것이라고!' 세상이 공평치 않음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공평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가 있으며, 나의 성공이 다른 이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을 때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양식이 된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our daily bread)을 주옵소서." 마찬가지로 동물의 왕국에서도 포식자에게 먹잇감이 되는 동물이 있기에 다른 동물들은 생명을 연장하고 초원에서 안식을 누린다. 농사와 동물의 일상이 보여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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