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쉼과 재충전의 시간
작성 : 2019년 06월 07일(금) 00:00 가+가-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말하기는 극히 부담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가 교회에 꼭 요구해야 하는 것이 휴가라고 생각한다. 흔히 목회자의 직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교인들 중에는 목사는 주일에 설교하는 일 외에는 날마다 일 없이 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여유로운 목사에게 무슨 휴가가 필요한가 하고 질문한다. 게다가 자신들은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참아가며 일하는데, 목회자가 휴가를 간다고 하면, 해도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필자가 이민교회를 목회할 때의 일이다. 주일을 빠지고 휴가를 다녀 오겠다고 했더니, 한 장로님이 반대하시면서 주중에는 쉬더라도 주일에 설교는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목사가 주일에 설교하려면, 한 주간 내내 설교 준비로 신경을 쓰기 때문에 사실상 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장로님은, 목사님이 교회 안 나오시면 자기도 안 나오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당시 그 장로님을 포함한 이민자들은 삶이 어려워서, 하던 일을 접어두고 휴가를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오늘도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교인들 사정을 가슴 아파하며 휴가를 갖지 못하고 만다. 그런데 그래도 목회자가 반드시 휴가를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목회자는 번아웃(Burnout, 탈진)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직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보니 결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그 일 자체도 감정 노동이다. 세상에서 지치고 병든 영혼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보듬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물론 목회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양(羊)이 있는 반면, 목회자의 감정 에너지를 모조리 소진시키는 양도 많다. 그래서 쉬지 못하면 번아웃된다. 목회자는 유한하기 때문에 감정 에너지가 소진되면 진정한 사랑이 교인에게 가질 않는다. 쉬지 못하면, 겉으로는 반갑게 또는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척 하지만, 사실 솔직히 마음 속에는 진정한 사랑이 없고 짜증부터 난다. 목회자가 교인에게 이래서야 되겠는가? 목회자로부터 이런 껍데기 사랑을 받기 바라는 교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교회 일에 더 열심히 헌신하고 충성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이 쉬는 것은 이에 반한다고 생각되기가 쉽다. 그래서 힘들어도 말 못하고 자신이 지친 줄 알지도 못한 채 번아웃이 되고 만다. 자신은 좀더 기도하지 못해서 그렇고, 좀더 열심을 내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더욱더 온 힘을 다해 섬겨보려 하지만, 한 번 탈진하면 회복이 힘들다. 용수철을 과도하게 당기면 회복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번아웃에 빠지면 회복하는데 수년 혹은 수십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목회를 그만두게 되는 이들도 많다.

미숙한 교인들이 볼 때는 목회자나 교인이나 다같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니 같아 보여도, 목회자는 돌보는 목자이고, 교인은 돌봄을 받는 양이기에 목회자와 교인은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주일은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맘대로 떠날 수도 없고 쉴 수도 없는 막중한 책임으로 인해 중압감이 심한 날이다. 물론 목회자가 하나님께 다 맡기고 믿음으로 행하면 부담될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목회자도 인간인지라 그런 원칙대로 살지 못하고, 갈멜산의 승리 후에 로뎀나무 아래까지 와서 기진맥진하여 주저 앉은 엘리야처럼,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반드시 휴가가 필요하다. 필자의 노회(서울노회)에서 모든 목회자가 시무 7년째에는 의무적으로 3개월 동안 안식월을 가지도록 결의하고 규칙에 넣은 일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휴가를 가지면 얻어지는 유익이 많다. 공간(Space)이 만들어진다.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는 언제나 감정적인 교류가 있게 마련인데, 심한 교류가 일어나면 마음에 피로가 쌓인다. 그러면 목회자도 교인도 가까와진 관계로 인해 마찰이 심해지고 자신을 보호하기가 힘들어진다. 그 파급력은 목회자의 아내나 가족에게도 미쳐서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의 교류는 정서적으로 너무 가까울 때 일어나 서로에게 피로를 주는데, 이 때 휴가는 둘 사이에 거리를 둠으로써 어느 정도 공간을 만들어 쉴 수 있게 한다. 시간적 공간, 물리적 공간과 함께 정서적 공간이 만들어져서 우리 마음이 숨쉬도록 여유를 되찾아 준다.

또한 휴가는 목회자가 자기 자신을 돌보도록 해 준다.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신 목회의 도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피곤에 지쳐 있거나 감정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휴가 기간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재충전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는 성도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돌보고 자신의 영혼을 먹여줄 차례다. 평소에 자지 못했던 잠을 충분히 잔다든지,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듣고 싶었던 음악,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등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자신을 격려하고 보듬어준다. 기도로 영성이 회복된다. 자신이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지 않으면 누가 자신을 소중히 여겨 주겠는가? 이렇게 회복된 목회자는 성도를 볼 때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목회자가 이렇게 회복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면 성도들도 본받고 자기를 돌볼 줄 알게 된다.

앞의 사건에서 필자는 장로님을 설득하는 것에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주일을 빠지고 휴가를 다녀 왔다. 그것이 진정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기 위한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녀와 보니 그 장로님도 그 주일엔 결석을 하시고 다시 나오셨다. 그런데 그 후로는 아무도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휴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다수 교인들은 교회와 자신들을 위하여 떠나는 목회자의 휴가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남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하여 용기있게 휴가를 떠나자!

황영태 목사/안동교회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