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한국교회의 과제
[ 특집 ]
작성 : 2019년 05월 28일(화) 13:24 가+가-
한국교회의 역사는 역설의 연속이다. 구한말 세상의 왕국 조선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 민족이 흔들릴 때 신앙은 뿌리를 내려졌으며, 한국전쟁의 아픔 속에서 교회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서북과 서울지역의 기독교인들이 자발적인 복음전도를 위해 부산을 찾았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피난 기독교인들을 통해 단시간 내에 동남단 땅 끝 부산까지 복음이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초대교회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된 것처럼, 한국교회의 전국적 확산도 전쟁이라는 아픔 가운데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은 부산지역 기독교 성장의 전환점이 되었다. 한국전쟁 시기에 설립된 피난 교회들이 현재 부산지역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내년부터 설립 70주년을 기념할 예정이다. 부산에는 한국전쟁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전쟁 개전과 함께 부산을 찾은 피난민들로 인해 인구는 순식간에 두 배로 증가했고, 부산의 산과 바닷가와 천변에 피난민들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오늘의 부산 모습을 형성했다.

또한 2,297명의 유엔군이 잠들어 있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묘역도 조성되어 있다. 이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다수가 평범한 기독청년들이었다. 한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한 미국(36명), 영국(884명), 캐나다(378명), 호주(281명)에서 파병된 전사자 총 1,579 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사에도 그리고 자국 교회사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기억되거나 기록되지 않은 채 역사의 사각지대에 남아있다.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조선을 떠나야만 했던 선교사들은 한국전쟁 개전과 함께 또 다시 일본으로 일시 피난했고, 한국교회는 홀로남아 전쟁과 피난의 아픔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전쟁'과 '교회분열' 그리고 '홍수와 태풍 등의 자연재해'를 겪어야만 했던 한국교회는 마치 '십자군전쟁'과 '교황권의 분열'과 '흑사병'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던 중세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으로 떠밀려온 수많은 이북 피난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했다. 그들은 떠나온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을 눈물로 떠올리며,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을 그리워했다. '평양노회사'(1990)에는 이들이 부산 보수산에 함께 모여 그들의 애통한 마음을 찬송으로 고백하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마음 아파 울 때에 눈물 씻어 주시고 나를 위로 하소서"를 부르며, 비록 자신들은 고향을 떠나 멀리멀리 왔고, 가족들도 멀리멀리 헤어져 있지만, 예수님만은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라고 애절한 기도를 드렸다. '평양노회사'는 "이 찬송을 부를 때 손수건은 눈물로 적시어졌고 찬송가가 울음소리로 변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절박한 피난생활 가운데, 부산의 교회들은 피난 온 기독교 형제자매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헌신적이었다. 부산진교회 영도제일교회 등은 "영적인 보살핌과 아울러 피난살이에 찌든 가난한 사람들의 위로자로서 모든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신앙공동체로서의 모습"(부산진교회백년사)을 보여주는 한편, "전란의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본 교회와 교인들은 피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 외면치 않았다."(영도제일교회100년사). 또한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던 거제도의 내간교회와 유천교회 등도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활동에 열심이었고, 월남한 목회자나 장로들이 시무하던 대부분의 거제지역의 교회들은 "음식, 의류, 주택 등을 무료로 제공하였고 어린이들의 교육문제까지 활동하였다."(거제 기독교 백년사).

한국전쟁과 종전 후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처한 현실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찬송가에 잘 드러나 있다. 1952년 부산에서 만들어져 피난 교회들을 통해 불리기 시작한 "눈을 들어 하늘 보라"가 대표적이다. 찬송의 가사는 한국전쟁의 참상과 피난 기독교인들의 형편을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라고 안타까워하는 한편, 길 잃은 영혼들에 대한 사랑은 뒤로 한 채 분열을 거듭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고 질책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은 전후세대가 다수인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들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론화의 장으로 미처 나오기도 전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틀에 갇혀버리고 마는 대한민국, 태극기와 촛불 중 하나를 택하도록 요구받고 중도는 설자리조차 찾기 힘든 대한민국,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방에 대한 비정하고 무차별적인 정치공세마저도 이념적 선명성과 애국심으로 해석되는 대한민국에 오늘 한국교회가 서있다. 한국전쟁 70주년, 내면화된 이념적 긴장과 갈등의 뿌리가 깊숙이 내려있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치유와 회복의 희년을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살아가기를 요청받고 있다.

탁지일 교수(부산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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