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새 그리고 사람
(눅 9:58, 마 8:20)
작성 : 2019년 05월 31일(금) 00:00 가+가-
본문은 제자도에 관한 말씀으로 거처 없이 방랑하는 인자(예수)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되어져 왔다. 하지만 거처 없는 자신의 외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듯한 이 발언은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다. 왜 그럴까? 일찍이 불트만은 이 말씀이 당시에 잘 알려진 속담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인자'의 원래적 의미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기실 이 말씀과 거의 비슷한 표현이 주전 2세기의 크라쿠스의 연설의 첫 문장에도 언급되고 있다. "이탈리아를 배회하며 떠도는 들짐승도 몸을 맡길 굴이나 보금자리가 있는데 이탈리아를 위해 싸운 자들과 죽은 자들은 단지 공기와 빛만을 누리고 집도 없이 처자들과 더불어 떠돌아다닌다…"(Tib.Gracc 9.4~5.828c). 당시 크라쿠스의 연설은 부자들의 탐욕에 맞서서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토지 균등법 제정을 변호하는 말이었다.

본문은 사람은 도시사회 속에 살아야 한다는 일반적 생각이 전도된 것을 보여준다. "도시사회에 살지 않는 것은 짐승이거나 신이 틀림이 없다."(Politica 1.1.9.1253a). 사람이라는 부류와 짐승이라는 부류(여우들과 새들로 표현)가 대비된다. 레비-스트라우스의 분류에 의하면, 여우는 땅 밑에 살고, 새는 땅 위의 공중에 살고, 사람은 땅에 사는 것을 총칭적으로 나타낸다. 총칭적 복수, '여우들'과 '새들'은 총칭적 단수인 '사람'(인자)과 대비를 이루고, 잘 쓰이지 않는 단어 '집이 있으되'(카타스케노세이스)는 이주하는 철새들이(시 103:12 LXX; 단 4:12) 텃새처럼 정착하여 산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철새가 텃새처럼 정착하여 산다는 이러한 역설적인 표현은 짐승들의 (사회적) 정착과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의 모습과의 대조를 표현하고 있다. 여우는 포도원을 헐고(아 2:15), 허물어진 도시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며 득실거리는(애 5:18; 시 63:10) 인간 문화에 해로운 짐승으로 그려지고 있다(느 4:3). 새들 역시 가장 자유로운 짐승으로서 도시사회를 건설하는 것과는 어울릴 수 없음을 아리스토파네스는 노래하고 있다(Aristophanes' Birds). 따라서 오늘의 말씀은 '들짐승들은 동굴에 살고 사람은 도시사회에 산다'는 일반적 생각이 전도된 그림이다(Politica 1.1.11.1253a; 시락 36:31).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당시의 정황, 농민들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게 만든 억압적 세력을 질타하는 풍자적 속담이다. 여기서 짐승은 이스라엘로부터 권리를 찬탈한 에돔인들과 로마인들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용어이다. 예를 들면, 예수는 헤롯 안티파스를 여우라고 불렀다(눅 13:32). 비슷하게도 다니엘 7장은 학대하는 이방의 세력을 사람과 대비되는 짐승들로 묘사한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은 전도된 세상(world upside down)에 대한 묵시문학적 유형으로서 '소외된 자들'과 '기층민'의 방랑하는 삶의 양식에 관한 말씀이다.

본문은 인자 예수의 방랑하는 실존이 아닌 예수를 따라 예수의 선교 사역(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동참한 자들의 방랑하는 실존에 관한 말씀이다. 바로 뒤따르는 선교위탁(제자파송)의 말씀(Q 10장)과의 긴밀한 관계는 이를 지지한다. 다시 말해서, 제자도에 관한 말씀으로써 예수 선교를 언급하는 선교위탁 강화가 소개된다. 제자도에 관한 말씀은 예언자적 모델에 근거한 하나님의 나라의 긴박성/우선됨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왕상 9:19~21; 렘 16:5~7; 겔 24:15~24).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예수의 요구는 예언자적 부름으로서 엘리사를 부르는 엘리야의 요구보다 더 엄격하였다. 엘리야는 적어도 엘리사가 그의 부모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재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도전은 "죽은 자들로 자기 죽은 자들을 매장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마 8:22)"는 말씀으로 명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들(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에 절대적인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고, 오직 하나의 온전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을 이 일에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본문이 가지는 쓸쓸한 어조는 사회로부터의 소외감을 표현하는 말씀으로서 '제자도'와 '분리/결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 왔다. 이 말씀을 듣는 청중은 그 자신들을 사회 경제적 의미에서 '소외된 자' 혹은 기층민으로 느꼈다. 한편 이 말씀이 기독론적으로 정초되어(oriented) 이해되었을 때는 사회나 도시로부터 떠난 삶을 사는 이들 자신들이 짐승과 같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우선적 관심은 제자도에 관한 세 말씀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열쇠를 제공한다. 예수를 따른 제자들은 예수의 이 말씀들을 명백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예언자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예수의 이 말씀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세상이 전도된 당시의 정황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묘사하는 본문 말씀은 자신들을 '소외된 자' 혹은 '기층민'으로 느꼈던 자들에게 제자도를 위한 철저한 분리의 말씀으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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