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가 허락하는 이혼은 있는가?
눅16:18, 마5:32
작성 : 2019년 05월 24일(금) 10:36 가+가-
'성서가 허락하는 이혼은 있는가?'라는 질문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한 바리새인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바리새인의 질문은 이혼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당시의 정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율법은 이혼을 허용한다. 신 24장 1~4절의 이혼에 관한 조항을 고려해 볼 때, 유대의 이혼 조항은 전적으로 남성중심적이다. 신명기의 이혼 조항은 어떻게 남편이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한 당시 유대의 법적 논쟁도 우선적으로 이혼의 허용 근거에 관심을 기울인다. 힐렐과 샴마이(B.C. 20) 그리고 그들의 학파들 사이의 논쟁은 자연히 이혼 허용의 근거인 '수치스러운 일'에 집중되고 있다. 샴마이 학파는 '수치스러운 일'을 성적인 배도 및 실수에 국한을 하지만, 힐렐 학파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아내가 남편의 음식을 망치는 일'도 수치스러운 일에 해당된다고 해석을 내린다. 심지어 랍비 아키바는 아내보다 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도 남편이 아내를 '기뻐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여 이혼의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필로와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의 실제적 관행은 힐렐 학파의 견해에 의해 결정되었다.

유대의 이혼은 남편의 재량에 달렸었다('기뻐하지 아니하고', '싫어하여', 신 24:1). 팔레스틴의 여자는 자진하여 이혼할 수 없었다. 여자는 남자가 '소유'로 주장하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했다. 이혼증서를 써줌으로써, 남편은 아내에 대한 권리를 양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만이 부정(몸을 더럽힘)과 연결되었다. 근동의 문화에서, 남자의 명예와 여자의 순결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아내의 순결은 남편의 명예에 속하는 일종의 '유사 상품'이었다. 아내는 그녀의 남편의 명예의 일부분이었다. 따라서 간음과 몸을 더럽힌다는 것이 남성의 시각에서 본 단지 여성에게만 제재된 굴레이었다. 이러한 성차별의 이념에 대한 근거를 유대인들은 성서를 통해 확증한다. 아담이 그의 상대인 여자를 보고서 기뻐 노래한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창 3:23)는 말씀을 들어 유대사회는 남녀관계를 종속관계로 해석하였다. 주후 2세기 랍비 예후다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저를 이방인으로 만들지 않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여자로 만들지 않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를 무지한 자로 만들지 않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거나, 이혼한 여인과 결혼하면 남자가 간음을 범하는 것이 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을 한다. 이 말씀은 이혼과 재혼을 남성의 간음으로 간주한다. 이 말씀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혼을 금지하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 이면에 깔려있는 남성위주의 편협함에 희생당하는 여성의 존엄성과 권리를 회복시킴에 그 목적이 있다. 예수는 명예가 단지 남성중심적인 것만이 아니라 또한 (동등하게) 여성중심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명예는 남자에게 속한 만큼 여자에게도 속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예수는 매우 놀랍게도 남자의 '간음'이라는 극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는 이혼을 율법이 규정한 법(명령)으로 이해하는 당시의 견해를 거부하셨다. 막 10:9은 댓구 형태의 하나님/사람, 짝지어 주심/갈라놓다를 대비함으로써 이혼을 금하고 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이혼은 만연된 사회 문제였으며, 여자도 역시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로마에서의 이혼은 심각한 상태로 "그들은 결혼하기 위해 이혼하고 이혼하기 위해 결혼한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바울은 주님의 명령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고전 7:10b, 11b에서 이혼을 금하고 있다. 막 10:9과 비교해 볼 때, 고전 7:10~11의 말씀은 같은 댓구 형태로 막 10:9의 사람이 갈라놓는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 '사람'은 '여자/남자'로 확대되고, '갈라놓다'는 '갈라서다/버리다'로 확대된다. "여자는 남편과 갈라서지 말라. 남편은 아내를 버리지 말라." 여기서 '갈라서다/버리다'의 헬라어 동사(코리스쎄나이/아피에나이)는 둘 다 이혼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혼의 문제는 아내와 남편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헬라의 법적 관행에 상응한다. 주목할 것은, 물론 창조자의 본래적 뜻에 관심을 두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권위를 두는 바울의 태도이다. 하지만 바울이 이혼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외적으로, 법률적 의미의 율법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두 남녀가 결합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다. '짝지워 주셨다'라는 말의 뜻은 함께 멍에를 멘다는 뜻이다. 그것은 밭을 갈기 위해 소 둘을 한 멍에에 붙잡아 맸다는 것이다. 이혼과 관련하여 예수가 비판한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생겨난 율법주의적 해석이다. 율법 이면에 깔려있는 남성위주의 문화에 희생당하는 여성의 존엄성과 권리를 회복시킴에 그 목적이 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혼을 금하고 있지만, 신앙 문제로 부부가 갈라서기를 원하면 이혼을 허용한다. 마태는 음행의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는 '남자의 간음'이라는 말을 통해, 결혼 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음행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예수의 말씀은 가부장적 구조와 가정(假定)들을 비판적으로 도전하고 있고,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사회적 가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러한 새로운 비전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를 드러내 보인다.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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