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미소
[ 목양칼럼 ]
작성 : 2019년 05월 17일(금) 00:00 가+가-
노회의 명을 받고 농아인 교회 문제를 수습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20여 명의 성도들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송을 힘차게 부르는데 느낌이 싸한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리라고는 반주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와 내 목소리가 전부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 열심히 손과 입을 놀리며 나름 최선을 다해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처음 대하는 풍경이 낯설다. 설교시간이 되어 강단에 올라 소리를 높여 설교하기 시작했다. 무반응. 고요함. 혼자 소리치고 있는 뻘쭘함.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통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내 입모양을 보며 두 손을 모아 아멘을 표시한다. 나의 행동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의 심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의 갈급한 심정으로 말씀을 듣고자 한다. 비록 소리는 못 내지만 가슴 벅차도록 온 몸을 다해 찬양한다. 한번이라도 입을 열어 소리 높여 찬양하고 싶은 간절함에 그들의 신음소리는 천사의 나팔소리로 들린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참 모습을 본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정상화를 위해 회의를 시작했다. 수화가 아니면 소통이 되지 않는 불편함. 일일이 종이에 내용을 써가며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숙의하는 데 진이 빠진다.

그동안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은 교회 부채와 생활의 어려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상처만 남기고 홀연히 떠나가셨다. 아비를 읽은 고아처럼 덩그런히 남아 교회를 지키는 성도들, 사태수습을 위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내 입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눈망울에 슬픔이 있다. 저들은 미소로 말한다. '우리는 교회를 포기 할 수 없다고', '교회를 떠나면 죽는다고'

촉촉한 눈망울에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나는 거절할 수 없는 천사의 미소와 촉촉한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저들을 돕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도전받고 돌아왔다. 저들의 유일한 안식처이며 위로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집을 지켜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 되었고 지금은 한달에 한번씩 방문하여 천사의 미소를 보는 것이 나의 낙이 되었다.

박태영 목사/샘솟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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