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한 선교부의 성향과 선교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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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19년 05월 17일(금) 00:00 가+가-
지난 호에는 영남과 호남의 유학적 다름이 지금까지 남아 생활 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례와 제례를 통하여 그 차이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한 선교부의 선교방법과 성향에 따른 지역과의 연합을 보려고 한다. 이에 대한 것도 결코 작지 않은 많은 것을 논해야 한다. 지면의 제약으로 여러 교파 중에서 장로교를 중심으로 그 가운데에서도 영호남지역으로 좁혀서 보려고 한다. 지방자치제로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지역을 새롭게 정의하여 지역의 자부심을 찾는 지방이 늘어나고 있다.

영남 지역의 대구 청라언덕과 부산 좌천동, 호남 지역에서 광주 양림동 역사문화마을을 보면, 우리나라 선교초기 유형인 교회와 병원과 학교를 세우며 말씀을 전하고 치료하고 교육한 모습이 동일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 청라언덕에는 대구제일교회와 제중원과 계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1893년 미국북장로교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가 대구제일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였고 1899년 선교사들이 제중원(현 동산의료원)에서 의료 선교를 하였으며 애락원에서는 나병을 치료했다. 1906년 계성학교를 대구제일교회 내에서 세우고 교육했다.

광주 양림동에도 역사문화마을이 있다. 그 역사문화마을은 1905년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이 교회를 세워 말씀을 전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하며 학교를 세워 교육하면서 세워진 곳이다. 그곳에는 1905년 배유지(Eugene Bell) 선교사가 양림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으며, 광주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은 광주, 전남지역의 가난한 환자들과 나병을 치료했다. 또한 1908년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여 근대교육을 시작했다.

또한 대구 청라언덕과 광주 양림역사문화마을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가 생활하였던 공간인 서양식 사택은 지하층과 지상 2층의 비슷한 형태로 지하층은 창고와 보일러실, 1층은 거실, 가족실, 다용도실, 주방, 욕실과 2층은 침실 등으로 건축되어 서양의 문물을 접하게 되는 새로운 공간의 역할을 했다.

부산 좌천동에서 호주선교부는 1891년 부산진교회와 1895년 일신여학교를, 1952년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각각 설립했다.

1884년부터 1897년까지 공식적으로 내한한 장로교 선교부의 성향을 구분해보면 호주선교부가 가장 보수적이었고 캐나다 선교부가 진보적이었다. 미국북장로교 선교부와 남장로교 선교부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내한 선교부는 선교지역의 중첩을 피하고 효율적 선교를 위하여 예양협정을 맺으며 지역분할정책을 수립했다.

그 결과 결정된 선교지역은 가장 보수적인 호주선교부가 부산, 경남지방을 담당하였는데 이 지역은 지금도 장로교에서 가장 보수적인 고신교단의 70%가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다. 부산 경남지역은 북장로교 선교부와 1889년 입국한 호주선교부가 선교하다가 1909년 예양협정으로 경남지역은 호주선교부가 전담하고 부산은 공동으로 선교하다가 1913년 부산까지 호주선교부가 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캐나다 선교부는 개방적인 함경도 지역을 맡았다. 함경도 지역을 개방적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언급도 하지 못하였던 여자장로 안수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1933년 함남 여전도회 연합회는 103명의 청원을 받아 1934년 제22회 교단 총회에 정식으로 헌의했다. 함경도 지역 캐나다 선교부는 1953년 신학을 받아들이는 폭의 문제로 분열된 한국기독교장로교와 손을 잡고 1955년 5월 제41회 총회에서 여자장로제도를 채택하였기에 같은 성향의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교회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간 갈등이 치열하게 나타났다. 캐나다 선교부는 진보적인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와 연합하여 1955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새롭게 선교협력하기로 했다. 현재 기장 교인의 40%가 수도권보다 호남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도 진보적인 캐나다 선교부와 호남지역과 비슷한 사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각국 내한선교부와 선교지로 분할된 지역의 성향이 비슷한 가운데 선교가 시작되었다.

당시 내한 각 선교부가 사용하던 선교방법으로는 네비우스 선교방법에 따른 지역 분할과 순회전도, 사랑방과 집구경, 사경회 등의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자진전도, 자력운영, 자주치리를 개념으로 한국장로교 선교부 공의회가 예양협정을 맺고 지역별 선교를 했다.

선교 지역은 유학의 지역적 바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토양의 차이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남의 사단(仁義禮智)에서 이(理)와 의(義), 호남의 칠정(喜怒哀樂愛惡慾)에서 기(氣)가 발동하고 있다.

호주선교부와 동역을 한 고신측은 경상좌도의 이황과 다른 경상우도로 남명 조식의 영향을 받았다. 남명 조식은 선조의 부름에도 출사하지 않고 처사(處士)로 생활하였으며, 실천 없는 지식을 배격하고 의(義)를 지향하여 국난에는 의병으로 애국하였던 보수적인 색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런 지역성이 신사참배반대를 위하여 평양과 전국적으로 다니며 어느 지역보다도 강한 역동성을 지녔기에 이 문제가 경남노회 중심으로 고신측 교단이 분열하게 되었다.

기장은 학문에서 신신학(新神學)을 받아들여 전통적인 보수교단과 분열되었다. 분열되고 캐나다 선교부와 손을 잡은 기장은 기가 발동하는 역동성과 수용성이 캐나다 선교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장의 40%가 호남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보면 호남의 학문적 수용성은 역동적인 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호남은 상례와 제례처럼 변화를 받아들여 생활에 맞게 고치려는 역동과 변화를 수용하는 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선교부가 자리잡았던 대구 청라언덕과 광주 양림역사문화마을, 부산 좌천동 지역에서 보듯이 복음을 직접 전하는 교회와 육영사업을 통한 학교, 건강을 돌보기 위한 병원을 설립하며 전도했다. 이처럼 각 선교부의 선교는 대동소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따라서 각 선교부가 비슷한 방법으로 선교하였음에도 영남의 교세와 호남의 교세가 약 10%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은 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이것은 유학의 지역성이 함유되어 있는 토양(밭)이 기독교의 복음을 수용하는데 다르게 작용하여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찬형 목사/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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