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피고"
3.삼전도비(三田渡碑)와 기독교전래(基督敎傳來)
작성 : 2019년 05월 13일(월) 15:08 가+가-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삼전도(三田渡). 아스라히 보이는 롯데월드 타워 바로 앞에 삼전도비가 세워져 있다.

삼전도비 앞에 선'박물관순례트리오' (오른쪽부터 최동휘 필자 최인호).
남한산성 서문(西門):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이 "시종50여명을 거느리고 서문을 통해 출성"(率侍從五十餘人 由西門出城)현장인 서문.
"무송아 '한국기독공보'에 연재하고 있는 '흔적을 찾아서' 고맙게 읽고 있다. 대구와 순천 이야기 무척 흥미롭구나. 우리 동네에도 그런 '흔적'이 하나 있거든. 롯데월드타워 바로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빗돌 말이다. 동네사람들은 그걸 없애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흔적을 찾아서' 취재를 부탁한다."

필자를 '무송아'라고 부르는 친구 최동휘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생. 서울 송파구 잠실에 살고 있다. 몇 해 전, 필자가 그 동네에 있는 주님의교회에 설교하러 간다니까, 친구 찾아왔다가 '하나님 나라' 주제 성경공부에 심취, 이젠 '성도'의 반열에 들어선 멋진 친구다. 체신부 고급관료 출신인데 '삼국지에 푹 빠져' 현지답사를 다녀온 마니아. 시를 쓰는 동창생 최인호와 더불어 우리는 '박물관 순례 트리오'. 사실인즉슨, 그 돌비가 자기 동네에 있다는 게 몹시 언짢다는 친구의 주문도 있는지라, 이래저래 '흔적을 찾아서' 잰 걸음이 될 수밖에 없는 필자의 복된 발걸음이여!



#삼전도비(三田渡碑)와 롯데월드타워(Lotte World Tower)

서울의 한강변 잠실나루에 엄청난 고층 빌딩 하나가 들어서 스카이라인을 확 바꿔 놓았다. 어지럽다. 성남 서울비행장으로 향하던 전투기의 항로를 변경하는 산고(産苦)를 치르고 태어난 지상 123층, 지하 6층, 높이 555m 롯데월드타워(Lotte World Tower). 한국에선 100층을 넘어선 첫 번째, 세계에선 5번째 높이의 건물이라 했다. 지난 4일 밤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대규모 불꽃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11분 50초 불꽃놀이에 3만여 발 폭죽을 사용, 화약가격 포함 행사비만 무려 60억 원 규모였으니 분당 5억 원짜리 공연이었던 셈. 약 100만 명이 불꽃쇼를 즐겼다고 롯데는 밝혔다. 엄청 화려하고 찬란하다. 그러나 군용비행장 활주로를 확 틀어놓을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걸 감안한다면, 한반도 최초(最初) 최고(最高) 최대(最大) 건물이라는 타이틀 치고는 '상처뿐인 영광' 아니겠는가? 민초(民草)들 속엔 그렇게 회자(膾炙)되고 있는 형편이다.

폐일언하고, 휘황찬란한 건물 앞에 서 있는 친구야, 화려함에 가려진 짙은 그늘, 거기 응달진 구석에 엉거주춤 웅크리고 서 있는 거대한 비석 목격하고 있지? 그 이름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세상사람들은 흔히 '삼전도비(三田渡碑)'라 부른다. 초고층 호화빌딩 인하여 더욱 처량한 신세로 급전직하! 어찌하여 망부석 마냥 스산한 모습으로 거기 그렇게 서 있단 말인가?



#병자호란(丙子胡亂)과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 그 나라 수도 심양을 떠난 지 열흘만에 우리 수도 한양에 이르렀다. 1636년(丙子·인조14년)에 오랑캐(胡)가 쳐들어 왔다(亂)-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질풍노도(疾風怒濤) 파죽지세(破竹之勢) 무혈입성(無血入城). 강화도 몽진 길에 나섰던 임금은 가까스로 남한산성으로 피신, 그토록 '오랑캐'라 멸시하던 청나라와 화의(和議)를 맺었다 했건만, 기실 항복(降伏)이라 해야 옳다.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전대미문(前代未聞) 치욕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삼전도비. 조선왕조실록은 증언한다.

'임금이 남염의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上着藍染衣 乘白馬 盡去儀仗 率侍從五十餘人由西門出城 王世子從焉)

분명코 백기투항(白旗投降)이언만 사관(史官)은 굳이 '출성'(出城)이라 기록해 놓았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꼴 아니겠는가. 패망의 역사는 비참했다. ①조선은 청(淸)에 신하의 예를 행할 것 ②명(明)과의 관계를 끊을 것 ③왕자와 대신의 자녀를 인질로 보낼 것 ④성곽의 증축 수리는 사전에 허락을 받을 것 ⑤황금 100냥, 백은 1000냥을 세폐로 바칠 것 등을 약조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 왕자들과 궁녀들이 인질로 끌려갔고, 척화파 김상헌은 물론 수많은 귀족의 자녀들이 볼모로, 윤집오달제 홍익한 삼학사(三學士)는 참형을 당했다. 심지어 공덕비 건립을 강요, 거대한 빗돌(높이 395cm, 너비 140cm, 무게 4만kg)을 삼전도에 세워야 했던 것이다.

사적 제101호로 지정된 이 삼전도비는 곧잘 대영박물관의 상징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과 비교되곤 한다. 나폴레옹 이집트 침공시 발굴된 이 돌은 이집트의 신성과 민중문자, 그리스어 등 3개 문자로 기록돼 고대 이집트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되는 보물. 삼전도비의 경우, 앞면에 만주와 몽골문자, 후면엔 한자 등 세 나라 언어로 음각, 17세기 동아시아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나 친구의 마음을 언짢게한 것처럼, 청황제 찬양일색의 비석은 부끄러움이요, 그러기에 땅에 묻고, 강에 빠뜨리고, 페인트 스프레이 공격 등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던 천덕꾸러기빗돌. 친구여, 어찌 우리 민족의 발자취 속에 영광만 있으리요. 비록 치욕스런 흔적이라 할지라도 보존, 자손만대 교훈 삼아 깨우침이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비문의 마지막 에필로그(epilogue)라네.

'마른 뼈에 다시 살이 붙었고, 얼어붙은 뿌리가 봄을 찾았네. 커다란 강 머리에 솟은 비석 우뚝하니, 만년토록 삼한(조선)은 황제의 은혜로다.(枯骨再肉 寒○復春 有石○然 大江之頭 萬載三韓 皇帝之休)'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피고"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피고,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아 흐른다."

영국 낭만파 시인 셸리(Percy B. Shelley)의 절창(絶唱)이다. 필자가 젊은 날 MBC프로듀서 재직시절 연출했던 다큐멘터리 드라마 '절망은 없다' 오프닝멘트. 그 싯귀는 어쩌면 비운의 왕자 소현, 그리고 폭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던 조선의 미래를 향한 격양가(擊壤歌) 아니겠는가. 명(明)을 무너뜨리고 북경(北京)으로 개선하는 청(淸) 황제를 좇아 하릴없이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던 조선의 왕세자. 결국 그의 명운은 그곳에서 피날레(finale)를 고하게 되는 것일까?

아아, 그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었으리요. 바로 그곳에서 반전(反轉)의 역사가 빚어질 줄이야! 귀인(貴人)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는 아담 샬(Joannes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독일출신의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 대청시헌력(大淸時憲曆)을 비롯, 20여 종의 과학서적을 찬술, 황실의 총애를 받아 흠정감정(欽定鑑正:천문대장)을 제수, 1650년 남천주당(南天主黨)을 건립, 주교연기(主敎緣起:교리서) 진복성전(眞福性詮:복음서) 주제군징(主制群徵:신학입문서) 등 기독교 서적을 편찬, 중국포교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던 걸출한 예수회 소속 선교사였던 것이다.

'볼모로 잡혀와 쓸쓸히 지내던 소현세자는 지성과 영성을 두루 갖춘 아담 샬을 만나 의기투합, 교분을 나누며 천문학은 물론 기독교 진리에 관하여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황비묵, 정교봉포 참조)'

예수회(Jesuit Society)는 왕족이나 상류층에 접근, 이른바 톱다운(Top-Down) 전교 방식으로 문화 종교적 영향을 끼쳐 개종을 꾀했던지라, 아담 샬과 소현의 해후는 곧바로 의기투합(意氣投合), 전후 60여 일 동안의 교유였으나 짧은 만남 긴 여운으로 승화, 두 차례나 감사 편지를 건네는 돈독한 관계로 진전했던 것이다.

'첫 번째 서신: 어제 천만뜻밖에 보내주신 귀중한 구세주 천주님의 성화(聖畵)를 비롯하여 각종 양학(洋學)서적 등의 선물을 배수하고 제가 얼마나 기뻐하오며 감사하옵는지 귀하는 상상조차 못하실 것입니다. (중략) 제가 고국에 돌아가오면 궁중 보물로 간직할 뿐만 아니라 재인(再印)해서 뜻있는 사자(士子)들에게 분포하겠나이다. (하략)'

'두 번째 서신: 저는 만일 귀하의 동료 중 혹자가 저 자신과 저희 나라 사람을 교도 훈육하기 위하여 저와 함께 저희 나라에 들어가 머물게 되기를 더욱 원하옵니다 마는, 함께 저희 나라에 들어갈 선교사를 안배하기가 정 불가능하다면 귀하가 말씀하시는 그 전도사라도 어느 정도 귀하 또는 귀하의 동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선교사'와 '전도사'를 조선의 왕세자가 조선땅으로 모셔가겠다는 것 아닌가. 소현세자의 신앙고백(信仰告白)이요, 전교소명(傳敎召命)이며, 조선야소교(朝鮮耶蘇敎) 전래역사(傳來歷史)의 초장(初章)이 열리는 상서로운 여명(黎明) 아니겠는가!



#환국(還國) 그리고 의문의 죽음

천하를 평정한 청국의 황제로부터 볼모로 잡혀온 패전국 조선의 왕세자 소현에게 환국조치가 하달, 10년만의 귀향(歸鄕)이 이뤄진다. 은전(恩典)이다. 소현세자는 아담 샬의 권고를 수용, 청국황제가 내린 궁녀 감독관이며 교우인 이방조(李邦詔) 장삼외(張三畏) 유중림(劉仲林) 곡풍등(谷豊登) 두문방(竇文芳) 등을 대동, 1644년 11월 26일 청국 수도 북경을 떠나 이듬해 2월 18일 한양에 당도한다. 이 사건의 선교사적 의미를 교회사가로부터 경청하게 된다.

'이로써 중국의 궁중에서 큰 세력을 펼치고 있던 천주교는 그대로 우리나라(조선) 궁중에서도 큰 발전을 보이려 했던 것이니, 이것은 높은 자리를 차지한 왕족들을 개종시킴으로써 조선 전체를 천주교의 나라로 만들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소현세자도 이 계획에 뜻을 같이하여 교우인 (중국인)환관 5인과 궁녀를 데리고 와서 이들을 궁중에서 살게하고, 장차는 신부를 맞아들여 천주교를 펼치는데 힘을 돋우려고 하였던 것이다.(유홍열, 한국천주교회사1, pp.45~46)'

이는 우리 역사상 최초(最初)의 기독교와의 공적인 접촉이며 복음전래(福音傳來) 선교역사(宣敎歷史)에 있어 대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이런가. 오호(嗚呼) 애재(哀哉) 오호(嗚呼) 통재(痛哉)! 조선왕조실록 인조 23년(1645년) 4월 26일자 기록을 접하게 될 줄이야!

'세자가 10년 동안 타국에 있으면서 온갖 고생을 두루 맛보고 본국에 돌아온 지 겨우 수개월만에 병이 들었는데 의관들 또한 함부로 침을 놓고 약을 쓰다가 끝내 죽기에 이르렀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슬프게 여겼다. 세자의 향년은 34세인데 3남 3녀를 두었다. (終至不救 國人悲之 世子年三十四 有三男三女)'

소현세자 환국 70일만의 급서(急逝)는 미스터리요, 뒷말이 무성한 게 사실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대목 하나! 북경에서 갖고 온 물품들이 탈이 됐으므로 불태우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루머가 온 나라에 파다했다는 사실. 이는 소현세자가 손수 지참했던 천주교 서적(書籍)

과 성물(聖物)을 지목하는 대목이다. 왕세자가 대동했던 중국인 천주교우 환관과 궁녀의 즉각적인 환국조치는 필연적 귀결이기도 했다. 이리하여, 모처럼 움트려 했던 복음의 씨앗은 속절없이 거친 땅 어둠 속 깊이깊이 묻혀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아 흐른다!"

친구여, 내 말 좀 들어보소. 한강변 삼전나루 현란한 타워 앞에 서있는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커다란 빗돌에 자화자찬(自畵自讚) 자신의 공(功)과 덕(德)을 새겨 넣었던 청국황제, 그는 지금 어디 있는가? 조선 땅을 무참히 짓밟았던 몹쓸 오랑캐, 그 청국은 지금 어디 있는가? 흔적조차 찾을 길 없잖은가! 그러나, 메마른 땅 속 깊숙이 묻혀버렸던 복음의 씨앗, 그 소중한 씨앗은 가녀린 뿌리를 내려 활착(活着), 모진 풍상우로(風霜雨露)를 겪어내며 마침내 거목(巨木)으로 성장, 오늘 이 강산에 이토록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복음의 열매를 맺고 있잖은가 말이외다!

'신묘막측(神妙莫測)할손 섭리(攝理Divine Providence)의 역사(歷史History=His+story)여! 장하도다. 신비롭고도 아름다울손 달고도 오묘한 복음(福音)의 비밀(秘密Mystery)이여!'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24~25) 아멘!'

----

(필자 주) 지난 4월 20일자 '흔적을 찾아서' (2)미국남장로교의 순천선교와 김형재 목사 기사 중 '청록파(靑綠派)'의 한문 표기를 '청록파(靑鹿派)'로 바로잡습니다. 김포천 님(광주)의 자상한 지적에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참고로 '청록파'는 1946년 공동시집'청록집'을 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세 시인을 이르는 말입니다. 아울러 이번 취재에서 현장안내와 사진촬영을 협조해 주신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한영희 주무관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무송 목사

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전 본보 사장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