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성(性), 얼마나 알고 있나요?
[ 현장칼럼 ]
작성 : 2019년 04월 24일(수) 21:03 가+가-
"혜민 목사야. 나 좀 도와줘."

어느 날 한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급히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항상 긍정적이고 유쾌하신 분이신데 그 날따라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딸이 얼마 전부터 이유없이 갑자기 교회를 안 나온다고,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목사님과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그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에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연락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뭔가 낌새를 눈치 챘는지 확인만 할 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도 계속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중에는 아예 확인조차 하질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고등학교 제자들이 시험 끝난 기념으로 놀자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피씨방에 갔는데 바로 그곳에서 나에게 전화하셨던 목사님의 딸을 만났다. 솔직히 뒤통수라도 한 대 때리고 싶었는데 욱! 올라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말없이 함께 게임을 했다. 그렇게 두 시간동안 게임을 했고 마지막에 "잘 지내!" 하며 쿨 하게 인사를 한 뒤 게임비까지 대신 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 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우리 만나요."

이 친구는 아까 얼마나 당혹스럽고 무서웠을까. 연락이 와도 계속 무시했던 목사님이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더니 아무 말 없이 게임만 하고, 게임비까지 대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게 아닌가. 아마 게임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다. 아무튼 우리는 그 날 밤 카페에서 드디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게 됐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그 친구가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주기 시작했다.

교회 연합 수련회를 갔는데 그 곳에서 다른 교회의 멋진 오빠를 만났고 계속 연락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성관계를 가지게 됐다. 이후로 두 사람은 크고 작은 일들로 자주 싸우게 됐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안긴 채 헤어지게 됐다. 이때부터 친구의 고민이 깊어졌다.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크리스찬이라면 선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것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단다. 담임 목사님이신 아빠가 나에게 실망할까봐 그리고 하나님께 벌을 받진 않을까 두려웠다고 했다. 혼자 끙끙거리다가 친구는 결심을 했다. '아, 교회를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신앙이 좋다고 여겨지는 친구들일수록 이런 생각과 결심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내가 더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열심히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그런 나를 예쁘게 보셔서 죄를 용서해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친구도 그랬다. 모든 예배에 다 참석했고 교회의 모든 활동들을 했다. 수련회 마지막 날 저녁 때마다 울면서 방언으로 기도를 했단다. '하나님. 저의 이 추악한 죄를 용서해 주세요!' 이 친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 전도사님, 선생님들은 아주 좋아하셨다. 하나님을 정말 잘 믿는 훌륭한 아이라고, 이 친구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항상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 친구에겐 누구에게도 말 못할 깊은 고민이 있었다.

'네가 아무리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어. 넌 이미 더럽혀진 죄인이야!' 누군가가 나에게 계속 속삭이는 것 같았단다. 울면서 기도하는 그 때는 괜찮지만 며칠, 몇 달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죄책감이 올라왔던 것이다. 이런 반복적인 삶을 2년이나 살던 어느 날, 이 친구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구원받을 자격이 없구나. 선을 넘어버린 나는 구제불능이구나. 하나님은 이런 나를 용서하시지도, 사랑하시지도 않는구나.' 그리고 바로 그 주 주일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그 때 이 아이의 손을 잡아줬더라면, 진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말해줬더라면! 혼자 고민하고 끙끙 앓았을 그 지난 시간들이 이 친구에겐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을까.

이 이야기는 결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장에서 이런 아이들을 너무나도 많이 만나고 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실을 우리 부모님'만', 어른들'만'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아이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워하지 않도록 먼저 다가가서 손을 꼭 잡아 주시길 부탁드린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진 않은지 사랑의 눈으로 살펴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어떻게 니가 그럴 수 있냐고 무조건 다그치기보다 아이의 어깨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길 소망한다.

정혜민 목사/브리지임팩트 성교육상담 센터장·기독교중독연구소 청소년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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