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의 아이들의 비유(눅 7:31~35, 마 11:15~19)
작성 : 2019년 04월 17일(수) 13:34 가+가-
본문은 '이 세대,' '식탁교제,' '인자,' '지혜'(Wisdom, 소피아)와 같은 주목할 만한 주제들을 담고 있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예수 사역의 '가장 중심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삶의 자리(Sitz im Leben)와 지혜 신학을 배경으로 예수의 사역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 초기 기독교의 신학적 지평을 제공하고 있다.

이 비유는 아이들의 반응에 관한 것이다. '비유하건대…같다'는 표현은 셈어적 표현, '…과 같이, …그러하다'는 뜻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서로 반응치 않는 아이들과 같이, 이 세대도 그러하다.' 즉, 세례 요한과 예수가 일깨우는 반응에 대해 '이 세대'가 반응치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대'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의 관용적 표현으로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세대'는 '이 사람들'로서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특별히 성서에서 '이 세대'라는 표현은 부정적 색깔의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참조, 시 24:6; 78:8; 95:10; 신 32:5; 렘 7:29). 따라서 '이 세대'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세례 요한과 예수와 예수 첫 공동체의 메시지 전파에 응답하지 않고 그들을 거부하고 배척한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이 세대'라는 특정 그룹으로 지목되고 있다(마 23장/눅 11장의 화선언). 또한 '이 세대'는 예루살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화선언은 바리새인들의 '특권적' 지위에서 비롯된 사회적, 개인적 행동을 질타하고 비판하고 있다. 본문에서도 '이 세대'는 암묵적으로 바리새인들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유의 무대는 아고라이다. 아고라는 장터 혹은 광장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당시 모임과 법정이 열린 (열린) 공간을 가리킨다. 둘째, '이 세대'는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 비유되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노는 것이 아니라 의례적인 '착석'을 했다(아마 법정에서). '앉다'와 '부르다'(프로스포네오)는 어휘는 수동적인 방관자의 비난하는 공격적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권세와 지위를 함의한다. 셋째, 이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에게 반응치 않고 권위적 자세와 지위로 세례 요한과 예수에 대해 비난조의 공식적인 선고를 하고 있다(32절, '프로스포네오'). 그들은 서로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의례적인 '언도/판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유의 이미지는 법정소송의 과정, 즉 재판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판결의 논조를 띠는 '지혜는 그 자녀로 말미암아 옳다함을 얻는다'(눅 7:35)는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피리를 부는 것은 춤을 추기 위한 것으로서 혼인잔치의 축제적 분위기에로의 초대이다. 한편, '곡을 한다'는 것은 장례식에서 유가족의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전문적으로 '곡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축제와 장례식에 대한 이미지는 예수의 삶과 세례 요한의 회개에 대한 엄격한 요구와 잘 어울린다. 주목할 것은 예수를 향한 '이 세대'의 비판은 식사 관습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행동은 우선적으로 '먹고 마심'으로 표현된다. 예수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은, 바리새인들의 모든 종교적인 정결예법 준수에 대한 부인과 죄인들과 세리와의 식사에 참여한 것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비난받는다. 이러한 탐식가와 술주정꾼이라는 표현은 신 21: 20에서 보여 주듯이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패역한 아들의 경우와 흡사하다. 이러한 표현은 인습적 지혜에 도전한 예수의 문화대항적 노력을 나타내 보인다. 예수의 식탁교제는 유대교의 거룩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며 위협이었다.

'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표현하는 인격화된 지혜이다(personified Wisdom). 지혜는 이스라엘에서 안착할 곳을 찾지만 찾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을 당한다(잠 1:8ff; 1에녹 42). '지혜의 자녀'라는 용어는 지혜의 부름에 응답한 자들을 가리킨다(잠 8:32; 시락 4:11; 15:2 참조). 비유에서 '지혜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에 응답하는 자들로서 '이 세대'라는 장터의 '아이들'(파이디아)과는 대조적으로 '자녀'(테크나)로 표현되고 있다. 지혜의 자녀들은 인자로 말미암아 학대받고 거부당하고 배척을 받지만 메시아 왕국에서 식탁교제의 주인공인 인자와 더불어 먹고 마실 것이다. '먹고 마심'으로 표현된 예수의 식탁교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갈라짐과 소외라는 갈등의 깊은 골이 무너지고 상생(相生)이라는 구원의 종말론적인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상징적 행동이며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이 짧은 비유는 우리에게 역사적 예수와 첫 예수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그려 보인다. 식탁교제를 두고서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그룹은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그들은 지배적 권력을 가진 '이 세대'로부터 거부와 배척을 당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경험에 대해 본문은 유대의 지혜(Wisdom) 모티프를 활용하여 예수의 사역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눅 7:35).

김형동 교수/부산장신대·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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