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참예
2019년 4월 20일 드리는 가정예배
작성 : 2019년 04월 20일(토) 00:10 가+가-

이상무 목사

▶본문 : 빌립보서 3장 10~11절

▶찬송 : 151장


"너무 화려하게만 시를 쓰려고 하지 마라"

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신앙도 그렇다. 화려함만 바라보면 맑은 영혼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없다. 우리의 신앙이 드러내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는 한 진실됨과 순수함은 결여되거나 빈약해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모습이 진실함과 경외감을 덮어버린다. 진실과 순수를 회복하는 은혜의 고난주간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 앞에 예수님은 오직 한 길, 오직 한 생각,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는 순종만 있었다.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고난에 참예한다는 첫 번째 의미는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기념한다, 기억한다는 말이다. 반복하여 그 의미를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희생과 사랑과 죽으심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주님의 고난을 기념한다는 것은 날마다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을 기억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그 일이 아니라 매일매일 주님과 함께 하는 축복의 잔치요. 주님의 생명을 나누는 복된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난에 참예한다는 두 번째 의미는 변화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내적인 변화를 동반하게 되어 있다. 내가 주인 되었던 삶이 변화되어 내 삶의 주인이 철저히 주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자리다. 그러기에 서로의 잘못과 허물을 드러내고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깨닫고 서로를 감싸 안아주고 덮어주는 것이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주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결단하는 자리, 겸손하게 주를 섬기겠다고 결심하는 자리인 것이다.

고난에 참예한다는 세 번째 의미는 증인 된다는 것이다. 순교를 각오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마데테스'라는 말은 '증인'이라는 뜻 이전에 '순교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이 말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 사이에서는 목숨까지도 신께 바친다는 순종과 절대적인 헌신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또한 이 말은 전쟁터에 나가 왕과 장군 앞에 자신의 상사 앞에 '목숨을 던진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말을 신약의 초대교회 성도들에겐 주님 앞에 신앙을 지키기에 절대적 헌신과 죽음인 순교까지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일은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치는 헌신과 주님의 증인 되어 살겠다는 각오이며 결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고난의 절기에 주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 닮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고난을 기억함으로 변화 받아 주님의 증인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무목사/한가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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