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소망을 나누는 교회
[ 목양칼럼 ]
작성 : 2019년 04월 05일(금) 20:34 가+가-
고승표 2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교인들에게 새해 소망을 작성해 보라고 했다. 뻔하고 거룩한 기도제목 말고, 마음 깊이 소망하고 원하는 위시리스트, 버킷리스트를 솔직하게 적기를 요청했다. 그랬더니, 체중을 5kg 감량해 리즈시절로 돌아가기, 복권 1등 당첨 등 적나라한 소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교회는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교회가 욕구와 욕망을 거룩과 경건이라는 가면 뒤로 숨기고 위장하는 가면무도회장이 되는 게 싫다. 차라리 수준 낮은 소원이라도, 부끄러운 욕망이라도, 정직하게 나누는 곳, 그리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존중하고 받아주는 곳이기를 원한다.

"성도들을 욕망의 괴물로 만들면 어쩌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욕망을 억압하며 받아주지 않으면 성도들은 위선의 괴물로 변해 갈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에겐 욕망과 위선 사이에서 교인들을 안내할 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교인들은 자신의 욕구를 거세하고 숨은 욕망을 억압하며, 교회의 문화에 길들여져 뻔한 '교회용 소원'을 간구한다.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소원을 말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교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필자는 참된 기도가 스스로 진정 바라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것이 창피하고 일차원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가감 없이 간구해야 한다. 기도도 그렇게 자신의 참된 소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정직하게 아뢰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이런 철학에 따라 교인들이 적어낸 솔직한 소원을 한 해 내내 예배당 한쪽에 걸어 둔다. 교인들은 짬날 때마다 그 앞에 모여 웃고 떠들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솔직한 소망과 적나라한 욕망들을 가감 없이 드러나는 교회, 그리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교회,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고 싶다.

고승표 목사 / 하나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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