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를 비굴하고 비참하게 만들지 마세요"
[ 특집 ]
작성 : 2019년 03월 25일(월) 11:00 가+가-
늘어나는 선교사 추방,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대응은?(3월특집) 5. 한국교회 향한 한 추방선교사의 제언

인도 교회에서 성찬예식을 하고 있는 현지 기독교인들.

2001년 상반기에 인도 방문 중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눈물로 20년 인도선교를 서약하고 돌아왔다. 카스트 타파와 달릿(천민) 해방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반상과 계급이 타파된 한국의 역사를 모델로 삼고 싶었다.

2004년 총회 파송 선교사 훈련을 마친 여름에는 왕성해지던 모든 국내사역과 교회를 두 후배 목사님에게 넘기고서 5인 가족이 소액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외국인의 선교를 허용하지 않는 남인도 벵갈루루에 들어가 거주하면서 불법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봄, 14년 만에 인도선교사를 사임하기 전까지 도시와 농촌 양 지역에서 100% 현지인 달릿천민 중심의 교회와 교육, 보육과 훈련 및 협력사역에 몰입했다.

2017년 5월 간접추방과 4회 연속 비자거부 이후로 갈팡질팡하는 선교사, 가족, 후원교회, 개인후원인들, 선교현지교회, 선교현지동역자 등 6자 모두 현재와 미래는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오롯이 선교사 본인과 가족, 그리고 하나님의 결자해지가 요구되는 상황이 되었다.

인도에 머무르는 14년여 간 선교를 허락하지 않는 인도에서 간접선교(비자목적외 활동)의 끝없는 불안정, 그리고 위험과 협박은 대사관, 공항출입국, 외국인담당경찰서, 자녀들의 학교, 현지교회, 선교사역지에서 계속되었다. 비밀과 하얀 거짓 증거의 연속은 선교사와 가족들을 탈진하게 만드는 첫번째 정신적 고통이었다.

2017년 추방되기 1년여 전부터 여러 전조현상들이 있었다. 선교를 위해 시작한 사업체에 현지경찰이 갑자기 찾아와서 사업조사와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의 명단으로 언급된 블랙리스트에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구속됐던 어느 한국선교사가 인도경찰과 동행하면서 발설했다는 설도 있다. 이와 연관된 불안감은 선교방향, 자녀교육비, 재정문제 등으로 인해 부부간의 갈등으로 확대되어 이혼의 언급과 심리치료의 강권 등도 이어졌다.

2015경부터 외국인들의 체류기간, 체류목적, 세금납부, 사업실적 등이 상세하게 정부의 컴퓨터에 저장되면서,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선교사의 신분 불안정과 활동의 노출이 심화되었다. 결국 은근한 출국압박을 받아서 인도의 일부 사업을 정리하고서 부부가 따로따로 출국하던 2017년 4월과 5월에는 공항 출입국경찰의 조사와 함께 재입국금지를 선고당했다.

2017년 4월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는 선교관에서 잠시 쉬면서 심리치료를 받기도 하였고, 7~11월에는 4개월여를 평택의 삼성반도체 하청 철공장에서 숙식하며 막노동을 하여 자녀교육비와 가족생계비를 충당했다. 그리고 12월부터는 5년여를 흩어져 지낸 가족들이 잠시 캐나다에서 함께 모여 4개월간 불안정한 동거생활을 하고서 귀국했다. 2017년 5월에는 선교사역을 제안받았던 스리랑카 남부지방의 합반토타에 가서 한 달을 머물며 현지선교의 가능성을 조사했다.

2017년 6~9월에는 인도경찰에 구속될 각오로 네팔·인도국경을 통해 육로로 인도에 밀입국을 하여 동북인도 아쌈 선교지역과, 장거리 기차를 이용하여 남인도 벵갈루루 지역의 기존 선교활동지 등을 3개월에 걸쳐 선교사역 및 선교이양 등을 했다. 그러나 인도 네팔 국경를 몰래 통과하다가 황당하게 체포되어 큰 액수의 벌금을 납부한 후 훈방조치가 되었기에 네팔을 거쳐 한국에 귀국하게 되었다. 2017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는 5개월여를 서울의 노숙인봉사단체에서 노숙인 동절기 아웃리치와 공동체숙식 등 노숙인사역을 통하여 3명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2년여에 걸쳐서 인도 재입국을 위한 사업비자, 여행비자, ETA비자 등 연속 4차례의 비자거부를 당한 뒤 2018년 3월에는 총회파송 선교사 사임과 함께 인도선교를 후원하신 분들께 선교헌금의 중단요청을 공지하고서 가족과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 사역을 위해 30일 금식 중에 40년간 방치한 골육친척들인 7남매의 구원을 위한 사명감을 재확인하고서, 산 속 비닐 움막에 칩거 중인 첫째 형님과의 숙식 및 그리고 산재 사고로 어려움에 있는 셋째 형님을 돌보는 40일 섬김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바로 이어서 2018~2019년 3월까지 서울에서 4개월 동안 노숙인 동절기 아웃리치와 함께 공동생활 4개월을 마치고 다시 2019년 3월 현재, 40년간 방치한 남매와 가족구원을 위해 가족연합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산속 움막 등에서 숙식을 이어가는 중이다. 40일을 마치면 광주의 ㅇ교회에서 한 달의 대리 목회 후에 또 다시 구름 순례자가 된다. 마음 속의 밀린 숙제들과 미래 사명들을 주님께 물어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인도선교지를 떠났지만 간접추방과 비자거부 이후에도 형편이 되는대로 현지요청에 따라 종종 인도 선교지에 선교비를 송금하고 있다. 다른 선교사들이 넘겨받기 어려운 인도의 선교현지의 실정과 한국선교후원지의 여러 상황들 때문이다. 한국 개교회들의 은근한 무한경쟁선교처럼 한국 개교회를 대표하는 선교사들도 무한경쟁선교의 은밀한 얼굴마담이 되는 현실이다. 신혼기의 허니문같은 선교초기의 새로움이 지나고 실제 선교를 하는 5년여가 되고,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야 하거나, 심신의 병치레를 하면서부터 한국교회나 총회에 대한 바라는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위기상황을 겪으면서부터 우리 선교사들은 비정규직이며 일용직인 최저임금의 파견근로자와 같은 상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비참하지만 한편으로는 '범사에 감사하라'를 되새긴다.

선교의 성과를 위한 한국교회의 성장를 위한 소모품이 된 듯한 선교사와 가족들의 존재는 선동되거나 갈 곳 없는 무능력한 기독교인들로 취급되어 값싼 의병취급을 받기 일쑤이다. 선교사들을 위한 총회 세계선교부의 오랜 규칙과 법규들은 실제로 사문화되어 원청과 하청, 또는 갑과 을의 관계처럼 되어 쌍방이 아닌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 주님만 바라보기 십상이다. 힘이 없다는 총회, 형편이 안된다는 개교회들의 독주 등은 선교와 관계된 모든 영역에 세속적인 책임 떠넘기기로 이어진다. 나와 한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경제적 선교인가? 선교적 경제인가? 목회적 선교인가? 선교적 목회인가? 선교사는 정규군인가? 의병인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선교사들에게 영적지원, 혼적지원, 육적지원의 삼위일체적 균형이 갖추어졌는가? 선교사는 오합지졸인가? 전천후 용사인가? 전방선교사와 후방선교사는 따로 살고 따로 죽나? 같이 살고 같이 죽나? 전방선교사만 팀워트와 공명정대가 요구되나 후방선교사들에게도 팀워크와 공명정대가 요구되나? 선교를 통한 성과는 무한 사유인가 무한 공유인가? 한국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한국교계의 빈익빈 부익부, 선교사들의 빈익빈 부익부, 세례 요한의 절규는 선교사의 순교인가? 후원교회, 후원단체, 후원자의 무책임하고 무기한적인 일방적인 행태는 선교사 가족의 인생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것은 아닌가?

비정규직 파견직 일용직 알바노동자에게처럼 일방적 후원 및 후원중단은 비굴하고 비참한 선교사로 추락시킨다. 이는 이런 취급을 겪는 선교사들을 통하여 선교현지에 그와 같은 변질된 기독교가 심게되는 흉악한 결과를 낳는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모두 지나서 최소 20년을 목표로 몰입 질주하다가 중도에 목표를 쉽게 바꿀 수 없기에 선교지를 나온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앞날이 오리무중상태이나 여러 무명유명한 만색억색의 손길들을 통한 사랑의 빚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순종으로 하루하루 당당하게 감사하면서 살아간다. 구름순례자가 되어서. 추방되거나 비자가 거부되거나 중도에 선교를 중단한 수많은 동역자들처럼!



이희운 목사

전 총회파송 인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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