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역의 반은 자녀교육이다
탄자니아 김정호 선교사
작성 : 2019년 03월 26일(화) 08:40 가+가-

김정호 선교사의 세 아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60km 지점에 위치한 키자베라 아프리카 대협곡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리프트벨리 선교사 자녀 기숙학교에서 우편물이 오면 가슴이 철렁하곤 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 중 하나가 큰 사고가 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현재 꿈 중 하나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인데 고등학교 때 꿈은 결혼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등학생 때 놀다가 하체를 심하게 다쳐 아이를 낳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는 이대 독자인 필자가 대를 잊지 못할까봐 각종 민간요법까지 사용하며 애를 썼다. 다행히 하나님 은혜로 결혼도 했고, 기적적으로 아이를 낳았는데 계속해서 세 아들을 갖게 됐다. 그런데 아이들도 필자처럼 첫째 아들은 낙하산을 타다가 어깨를 다쳐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해병대를 지원해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고, 둘째는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심하게 다쳐군 군복무를 면제 받았다.

선교사는 복음만 잘 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타문화권에 오래 살다보니 자녀 돌봄이 사역의 절반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정은 4대까지 사역을 감당했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별명을 가졌던 나는 빚 진자의 심정으로 "최소 5대까지는 선교사로 쓰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자녀들에게 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자녀와 후손들이 이슬람 지역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기초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

1년 정도 현장사역을 배우는 견습선교사들도 나름의 각오와 헌신으로 소중한 기회를 얻지만, 어찌보면 우리 아이들은 10년 이상 현장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은 셈이다. 아이들은 현지 음식, 날씨, 언어, 대인관계 등 모든 부분에서 성인보다 잘 적응한다.

물론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 어렸을 땐 영어를 못해 현지인 학교에 다녔는데 친구들이 자신과 다르다며 머리카락을 잡아 당기고 피부를 만져 힘들기도 했다. 현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구타하기도 했으며, 뜨겁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코피가 나거나 아픈 일도 많았다. 처음 거주했던 집에선 벼룩이 침대까지 올라와 피를 빨았다. 여섯 살 막내는 어린 피부라서 그런지 물린 자리가 부어올라 고름이 나왔고 이차 감염까지 진행돼 너무 힘들어 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결국 빈대에게 적응을 했다. 물려도 물린 자리가 조금 붉게 표시나는 정도였고, 곧 가라앉았다.

사역지를 옮기면 학교 보내는 일이 어려워질 것같아 기숙사 학교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여러 번의 도전 끝에 케냐에 있는 리프트벨리학교에 겨우 입학을 시켰다. 재학생 중 한국 선교사 자녀가 100명 가까이 되는데, 이들은 함께 생활하며 선교사 후보생으로 교육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 아이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 필자의 기도처럼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일꾼이 되기를 기대한다. 세 아이들은 아프리카 현지의 말라리아, 황열병 등 어떤 질병도 잘 견디고 마치 현지인처럼 적응할 것이다. 이들의 마음 속에 복음의 전달자로 불타는 열정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김정호 목사 / 총회 파송 탄자니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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