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에 대한 단상
강건상 목사
작성 : 2019년 03월 29일(금) 08:35 가+가-
필자는 콜라를 아주 좋아한다. 음식과 함께 음료수를 먹을 때면 콜라를 즐겨 선택하고, 하루에도 콜라 몇 잔을 먹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사람이다. 콜라에 대한 유별난 선호를 아는 우리 교회 교인들은 고맙게도 필자의 애정에 기꺼이 장단을 맞춰준다. 심방을 가도 필자를 위해 커피나 주스 대신 콜라를 준비해 놓거나,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 때도 음료를 준비하면서 굳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콜라를 빠트리지 않는다.

하지만 콜라를 좋아한다고 모든 종류의 콜라를 무턱대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특정 제조사의 콜라를 좋아하고, 다른 제조사의 제품은 그 제품이 없을 때만 마신다. 그리고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다이어트 콜라는 싫어한다. 필자의 콜라 선호는 이처럼 다소 까탈스럽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필자의 선호를 아는지 여부는 교인이 우리 교회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 판별하는 암묵적 지표가 될 정도다. 이쯤 되니 콜라에 대한 단순한 선호자를 넘어 콜라 매니아(콜라 중독자는 왠지 회개해야 될 것 같다)로 불려져도 억울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교인들 중에는 콜라가 몸에 좋지 않고 치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충정어린 염려를 넘어, 간혹 필자의 유난스러운 특정 제품 선호에 대해 애교스럽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눈을 감고 마시면 제조사의 구별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코를 막고 마시면 콜라와 사이다의 구분조차도 가능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콜라에 대한 애정을 지닌 자로서 분명히 말하는 것은 충분히 구분이 가능하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미세한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는 감별력이 생기는 것 같다. "뭐 그게 그거 아닌가요?" 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맛의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분별력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 혼탁한 영적 속임수와 이단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에서(요일 4:1) 우리의 영적 감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말씀을 좋아하고 말씀을 즐겨 먹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성경을 좋아하지 않으면 성경과 이단사설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인다. 코를 막고 눈을 감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 듣기를 좋아하면 우리의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그 분별력을 성경은 성숙함이라고 말한다(히5:14). 신앙인으로서 어떤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남다른 분별력 이상으로 성경 매니아가 가지는 영적 분별력도 갖추기를 소원한다.

사족을 달면 같은 콜라 제품 중에서도 병콜라와 창고형 매장에서 파는 355ml 캔콜라가 같은 제조사의 콜라들 중에서도 더 맛있다.

강건상 목사 / 세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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