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출한 여성 지도력 발휘
기독교교육사상가열전 9. 김필례 <2> 교회·사회 여성운동의 선구자
작성 : 2019년 03월 19일(화) 11:27 가+가-
광주의 3.1운동은 양림리(광주군 효천면, 현재 호남신학대학 근처)에 거주하는 외국인(미국) 선교사들, 최흥종 장로, 김필례와 김함라 등 국제정세에 밝은 교회지도자들이 청년들과 자주 모여서 독립운동의 기운을 북돋우는 가운데서 일어났다. 청년들은 '삼합양조장'이란 간판을 달아놓고 주로 밤에 모였다.

광주 독립만세시위의 불씨는 외부로부터 전해졌다. 일본 동경 2.8독립선언서가 정광호와 김마리아를 통해 전달되었다. 또 김필수 목사가 서울에서 광주로 와서 최흥종 장로, 김철(김복현) 집사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하는 밀담을 나누었다. 그 직후, 최흥종과 김철이 서울의 만세시위 상황을 직접 확인코자 서울로 갔다. 그러나 최흥종은 만세시위와 관련되어 체포되었다. 김철이 급히 광주로 돌아와서 남궁혁 장로(북문안교회, 현재 광주제일교회)의 집에서 만세시위를 위해 회동했다. 숭일학교 교사 김강·최병준, 삼합양조장 회원 황상호·강석봉·최한영·한길상·최영균·김용규·최정두·서정희, 기독교인 김봉렬·홍승애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인쇄와 태극기 제작, 학생동원(수피아여학교, 숭일중학교 등) 등에 관하여 논의하고 역할분담을 했다. 거사일은 3월 10일(작은 장날) 오후 3시로 정해졌다.

거사 전날(9일) 밤,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진신애 등이 상급반 여학생들(홍순남·박영자·최경애·양태원)과 태극기를 만들었다.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송흥진 등은 여러 학교 학생들에게 독립만세시위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3월 10일 아침 박애순은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며 오후 2시까지 부동교 밑 장터로 모이게 했다.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태극기를 가슴에 숨기고서 양림리에서 장터로 갔다. 시장에 운집한 군중들 사이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또 '경고아이천만동포'(警告我二千万同胞)라는 유인물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가 우체국 앞에 이르자, 무장헌병대가 출동해서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행진이 경찰부에 이르자, 무장 군경이 총검을 휘둘렀다. 일제에 의해 기소된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진신애와 학생 21명에게 징역 4개월에서 1년 6개월의 선고가 내렸다.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광주3.1만세운동'기념동상이 수피아여학교 교정에 있다.

광주의 독립만세시위는 기독교학교 학생들과 교인들이 조직적으로 이끌었고, 또 이들은 '조선독립광주신문'도 발간했다. 이 신문이 전라남도 여러 지역으로 만세시위 소식을 전했고, 이와 함께 독립만세시위도 확산되었다. 그러던 중, 광주 3.1운동 소식이 목포의 정명여학교와 양동교회에 선교사 김아각을 통해 전달되었다.

정신학교 연지동 교정에서 교사들과 함께한 김필례 선생.(앞줄 중앙)
1920년 9월부터 김필례는 광주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녀가 길러낸 수많은 제자들이 지역의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녀는 1937년까지 수피아여자중학교 교사와 교감으로 일했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그녀는 신사참배거부로 폐교되었다가 복구된 수피아여자중학교 제6대 교장에 취임했다(1945.12.5). 1947년 7월에 그녀는 모교인 서울 정신여자중학교 제12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김필례는 일본 유학시절 경험했던 '기독교여자청년연합회(YWCA)'를 한국에서도 설립하고자 했다. 그녀는 김활란과 함께 1922년 3월 경성여자교육협회에서 제1차 발기회를 열었다. 한 달 뒤(4월), 그녀는 북경 청화대학(靑華大學)에서 열린 세계기독학생대회(World's Student Christian Federation)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했다. 여기에서 그녀는 YWCA를 창설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알아냈다. 귀국 후, YWCA 창립을 위해 그녀는 여러 지인들을 만나서 자문을 구했고 또 필요한 경비를 모금하고자 여러 유지들을 방문했고,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준비 강연회를 개최했다. 1923년 8월 협성여자성경학원에서 11개 학교 대표 70명이 모여서 YWCA를 창립했다. 이 여성단체는 1924년 세계 YWCA 회원국이 되었다.

YWCA는 실력양성론에 기반을 두고 여성 계몽과 생활 개선(위생)에 역점을 두었다. 여성 계몽을 위한 가장 절실한 사업은 문맹퇴치였다. 그 당시의 여성 대다수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현실이었으므로, 문맹퇴치사업은 여성에게 가장 절실했고 또 폭 넓은 여성 대중운동이었다. 이 사업을 위하여 이 연합회는 야학과 강습소를 만들었다. 야학에서는 한글읽기와 쓰기교육 이외에 성경, 음악, 산수, 영어, 그리고 기술(뜨개질)을 가르쳤다.

광주 수피아여학교 보통과 제15회 졸업 기념 사진. 네번째줄 제일 왼쪽이 당시 교사였던 김필례 선생. /김필례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임희국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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