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했던 첫 번 째 안식년
김정호 선교사5
작성 : 2019년 03월 19일(화) 09:33 가+가-

안식년 후 사역하게 된 잔지바르섬 부근에 있는 펨바섬에만 서식하는 황금박쥐. 선교지의 특별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교사들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절) 말씀,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5년 동안 사역하고 6년째는 안식년으로 다음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필자는 조건 없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왔기에 다른 어떤 상황도 그 열정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안식년 때 나에게도 도전의 시간이 찾아왔다. 안식년 전 첫 번째 기간인 5년 동안은 정말 후원교회의 전적인 지원으로, 다른 선교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안식년 후까지 후원약정이 이어지지 않아 후원교회를 찾기 위해 기도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파송 받았다고 하면서 후원이 없어서 그만 둔다면, 그것은 가짜가 아니냐."

결국 후원이 잘 될 때도 감사로 감당하고, 그렇지 않아 생활이 어렵고 자녀들 학비도 끊어지고 먹을 것이 없어도 나는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옳다고 결론 내렸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죽을지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은혜에 감사하므로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안식년 동안 후원교회를 찾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황열병과 말라리아 등 전염병에도 적응되지 않는 타향에서 사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보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아내와의 의견 충돌, 현지인과의 갈등, 체력 저하 등으로 평안하게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왜 교단이 선교사들에게만 특별히 안식년이라는 재충전의 시간을 규정해 놓았는지 알게 됐다.

아내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쳐서 깁스를 하고 우간다의 동료 선교사 집에서 지내고 있었고, 나는 탄자니아로 선교국을 변경하기 위해서 비자 등의 행정 절차를 알아봤다. 그리고 동기 선교사가 안식년을 맞아 장신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함께 선교에 관련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최근 가장 필요한 것이 도시빈민선교라는 말을 듣고 탄자니아의 최대 도시인 다르에스살람의 빈민지역인 랑기타투 지역을 조사하고 집 계약까지 했지만 상황이 허락지 않아, 결국 수습기간 때 조사했던 잔지바르로 돌아왔다. 다시 이곳에서 이슬람 사회에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새로운 후원교회도 연결돼 다시 선교지로 나올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변해도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영원한 안식으로 부르심을 찬양한다.

김정호 목사 / 총회 파송 탄자니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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