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로 나아가자!
작성 : 2019년 03월 12일(화) 11:19 가+가-

서정오 목사

마가복음 1장 12절은 이렇게 적고 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몰아내셨다'는 말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해서 부드럽게 문장을 바꾸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유대광야로 나아가심에 '자원하심' 보다는 수동적 '순종'에 무게를 둔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로 '등 떠밀려 광야로 나아가셨다'는 것이다. 광야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장소이지만, 신앙과 사명의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다. 유대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의 광야훈련이 있어야 했듯이,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훈련받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사울이 아라비아 광야로 나아가야 했듯이, 심지어 사람 되어 오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유대광야로 나아가 40일을 시련을 받으셔야 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광야의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의 선배들이 부활주일 전 40일을 사순절로 지키며 스스로 광야의 훈련을 해왔던 것처럼, 이제 또 우리는 다시 엎드려 성령님의 이끌리심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광야란 어떤 곳인가? 우리 자신의 실체를 깨닫는 곳이다. 메마른 광야 한복판에서 우리는 생쥐 한 마리의 생존능력도 없다. 훈장, 졸업장, 학연, 지연, 인기, 명예, 직함 등 우리의 소유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우리 겉을 장식하고 꾸미는 모든 것이 벗어지고, 내 속에 숨겨졌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헨리 나우웬은 '광야로 나아가는 고독훈련을 거짓자아가 죽고 참자아를 발견하는 곳'이라며 '변화의 용광로'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령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원치 않는 시련의 광야로 등떠밀어 몰아내시는 것이다. 거기서 나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라고 말이다.

메마른 사막을 지나던 나그네가 황금이 묻힌 곳을 발견했다. 모든 주머니에 황금을 채우고도 담을 곳이 없자, 물 부대의 물을 다 비우고 황금으로 채우고는 길을 떠났다. 하지만, 쉽게 샘물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던 기대와는 달리, 가도 가도 먹을 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태양 볕은 타오르고 목은 갈증으로 타들어갔다. 죽을 힘을 다해 가다가, 저 멀리 한 사람이 물주머니 같은 가죽부대를 쥐고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 '물 좀 달라'했지만, 살펴보니, 그는 이미 죽었고, 그가 가졌던 가죽부대에는 물이 아닌, 황금조각들만 가득 차 있었다. 그 앞에서 "겨우 황금조각이란 말인가? 물, 물, 물!"이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황금을 찾는다. 그래서 가끔 그것을 얻고 기뻐하며 생수를 다 쏟아버리지만, 얼마 못 가서 광야 인생길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은 황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한다. 우리 인생의 실존을 너무나 잘 표현한 우화가 아닌가? 황금은 소중하다. 하지만, 메마른 광야 한복판에서는 물 한 모금보다 쓸모가 없다.

2019년 사순절을 지내면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우리의 꾸며진 외형적 장식들을 다 벗어버리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광야로 나아가자. 오늘 한국교회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힘과 권력, 더 잘 조직된 체제가 아니다.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서서 변화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서는 영성이 필요하다.

'모두가 원하는 넓은 길을 버리고, 저 빈들 광야로 나아가세. 모두가 원하는 쉬운 길을 버리고 바람 같은 자유의 땅 광야로 나아가세. 미디안 광야의 40년이 없었다면, 모세는 어떻게 빚어졌을까? 출애굽의 역사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거친 광야로 나아가세. 주님의 마음을 배우세. 침묵의 언어를 익히고 자신을 더 많이 내어주려…'(강명식의 '광야로'에서)

서정오 목사/동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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