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의 사택 건축
김정호 선교사4
작성 : 2019년 03월 12일(화) 09:47 가+가-

우간다에 건축한 사택.

우리 여행의 마지막은 주님이 계시는 본향이다. 한국에서도 목회를 하면서 이사를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선교지인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면 이사를 많이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눈물 날 정도로 이사를 많이 했다. 처음 살았던 게스트하우스 생활, 가축을 키워서 생긴 벼룩이 많았던 집,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수영장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 첫날밤에 신발을 다 도둑맞은 집, 펨바에서 혼자 월100달러로 살았던 집, 선교사의 삶은 되도록 짐이 적어야 하는 데 살면서 생긴 살림들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짐차에 실어도 안심이 안 되어 차를 함께 타고 가든지 짐칸 위에 타고 감시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여차여차해서 우간다까지 이사를 하게 됐다.컨테이너 트럭을 빌려서 나는 함께 트럭을 타고 이사를 했다. 탄자니아 지역 모로고로, 도도마, 싱기다, 카하마, 보코바를 지나 국경지역 인무투쿨라에 일주일간 묶여 있으면서 스페셜 비자를 받고서 겨우 짐들을 통과시켰다. 국경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힘을 다뺐다. 그래도 새로운 사역지로 보내심에 감사했다. 처음에 후원교회에서 우간다로 사역지를 옮기는 것을 제안받았을 때 또 망설였다. 꿈에도 그리던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와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가 있는 꿈의 땅인 탄자니아에서 우간다로 옮길 것을 요청 받았을 때 하나님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후원교회의 요청을 하나님의 콜링으로 알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역지를 옮기기로 했다. 눈물 없이는 순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순종 뒤에는기쁨을 주셨다. 이사를 하자마자 모든민족신학교(All Nations Theological and Seminary)의 체육교수직을 맡게 됐다.그리고 바로 사택을 지을 수 있는 4000만원을 받게 됐다.아이들은 케냐에 있는 기숙학교에 보내고 아내와 나는 열심히 건축비를 아껴가면서, 다투기도 하면서 빅토리아호수 옆 반석 위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었다. 하루는 바위 밑에 있는 큰 나무 주위를 검은 코브라가 감싸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코브라 중 제일 큰 놈이었다. 그 옆에 있는 동굴에는 등에 창을 달고 다니는 산미치광이 호저의 굴이 있었지만 접근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조금씩 현지인과 함께 주변을 정리하면서 야생짐승의 동굴이 다니엘의 동굴로 바뀌었다. 이제 은퇴할 때까지 여기서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건축을 마무리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사택을 건축하면서 맡은 보직이 넓은 부지의 학교를 지키는 경비팀을 관리하고 훈련하는 일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태권도도 가르치고 시간을 짜서 훈련을 하는데 한 경비가 불성실해 몇번 경고한 후 해고했더니 현장에 협박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전임자는 총에 맞아 한국에 돌아갔지만 당신은 관에 들어가서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이 일로 긴급하게 선교사들이 모였고 근처의 경찰서에 상황보고를 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밤에는 출입을 금지시켰다. 다행히 그 이후로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선교사는 현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10:45)"

김정호 목사 / 총회 파송 탄자니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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