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훈련
2019년 3월 20일 드리는 예배
작성 : 2019년 03월 20일(수) 00:10 가+가-

문귀주 목사

▶본문 : 시편 1:2

▶찬송가 : 288장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대적은 다음 세 가지 즉 시끄러움과 조급함과 혼잡함을 통하여 역사한다. 그래서 정신분석자 칼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미귀이다". 우리 삶에 자리 잡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탈피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묵상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묵상이 성령하나님과 가장 깊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묵상이라는 단어가 쓰여질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함,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되풀이해서 말함, 하나님의 일을 반추함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온전한 묵상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결과로 변화된 행위를 강조한다. 즉 묵상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회개와 순종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한다.

묵상을 할 때 우리는 토마스 아켐피스가 "예수님과 친한 친구관계"라고 한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빛 속으로 들어가 그 자세를 편히 즐기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임재는 교리를 넘어 온전한 현실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나와 함께 걸으시며 나와 함께 말씀하신다"는 말은 경건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솔직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수많은 영성 훈련가운데 묵상으로 나아가야하는가를 질문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대화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알 필요가 있다. 주님은 우리 마음속 성소에서 주인이 되셔서 자든지 깨든지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 이 성소의 문을 묵상이 열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교제는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킨다. 마음속 성소에서 성령님의 임재로 말미암은 영원한 불길이 타오르면하나님의 불이 부정한 모든 것을 소멸하기 때문이다. 항상 곁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늘 우리를 인도하므로 로마서의 말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온전히 누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묵상의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려야 한다. "의무"가 아니라"소원"으로 내려놓아야 한다. 묵상을 통한 성령 안에서 온전한 임재를 추구하는 우리의 욕구와 열망이 묵상이 계속 지속될수록 서서히 말씀과 맞추어지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상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오해가 있는가하면 묵상을 종교적 형태의 심리학적인 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온전한 묵상은 인간적인 체험은 제한하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러한 묵상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따로 정한 후 특정 시간에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교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묵상은 하루 24시간의 일이다. 묵상기도는 생활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묵상의 시간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뛰어다니거나 정신없이 활동에서 좀더 멀직이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일로 시달리며 분산되어 있는 마음은 묵상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마음이다. 교부들은 종종 "거룩한 여가"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우리에게는 새벽시간이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진리가운데 말씀하시는 성령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이 "거룩한 여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더욱 충만해져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묵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감정과 정신을 온전히 성령님께 집중하오니 오셔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귀주 목사/평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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