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로 보내는 것이 맞다
탄자니아 김정호 선교사2
작성 : 2019년 02월 26일(화) 09:58 가+가-

김정호 선교사와 가족.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공사현장, 박스공장, 직업훈련원 등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때로는 택시운전도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대구제일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선교사를 준비하며 신학을 시작했다.

선교단체에선 자비량 선교도 가능하지만, 후원교회가 없으면 파송이 안 되는 총회 정책에 따라 필자도 파송교회를 구해야 했다. 신학을 시작한 후 여러 교회에서 사역하며 목회자와 선교사로 훈련을 받았다. 선교사 교육을 받은 후 총회를 통해 일산에 있는 일암교회가 몇 년 전부터 선교사를 단독 후원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해 후원을 받게 됐다. 당시 총회 세계선교부에서 총무와 면접을 했는데, 총무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파송 받기 위해서 준비했지만, 하나님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시면 순종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당시 이 질문에 필자는 솔직히 파송교회가 필요해서, 후원교회가 있어야 선교사로 파송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 탄자니아가 아니더라도 어디든 가라고 하면 순종하고 가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일암교회에선 한국에서 가까운 몽골로 파송할 선교사를 찾는다고 했다. 요즘엔 상황이 좀 바뀌긴 했지만 그때는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후원할 땐 가급적 한국과 가깝고, 방문하기가 쉬운 동남아시아 지역에 집중되고 있었다. 교회 선교위원회가 요청한 서류와 이력서 등을 제출한 후 소식을 기다렸다. 파송교회는 이 서류들을 하나씩 살펴 본 후 '이 선교사 후보생은 몽골로 보내기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보내는 것이 옳다'고 결정을 했으며, 필자에게 그렇게 통보해 왔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뛸듯이 기뻤다. 사실, 순종한다고 말은 했지만, 마음 속으론 불편함이 있었다. 파송교회가 나를 탄자니아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불안한 마음에 큰 기쁨을 안겨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10년 가까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파송을 준비했지만,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대학을 세 곳이나 다니면서 노력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아프리카 대륙의 열악한 환경을 바꾸려면 나무를 심고 가축을 잘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순천대학교 산림자원학과와 동물자원학과에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아프리카 사람들이 보통 시간과 공간만 있으면 공을 차고 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태권도를 배워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인대학교에서 사범자격증을 땄는데, 이런 모든 것이 파송교회까지 '아프리카로 보내는 것이 맞다'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2006년 9월 13일에 소망의 대륙,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짐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와 세 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보내심을 받았다.

김정호 목사 / 총회파송 탄자니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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