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에 나타난 기독교 사상
독립선언서, 그것은 신앙고백이었다
작성 : 2019년 02월 20일(수) 08:00 가+가-

태화관에서 진행 중인 민족 대표 33인의 선언식(기록화)

독립선언서에 드러난 기독교 정신

#거사가 논의되다

1919년 1월. 북촌 계동의 박승봉 장로(안국동 안동교회)의 자택. 이승훈 송진우 현상윤 이상재 함태영 박희도 김필수 … 그리고 최린 오세창 김동규 권등진 … 한용운 ….

기독교 천도교 불교 종교지도자들이 모였다. 바로 기미년의 거사가 기획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해 2월 "기미년 운동을 독립선언 형식으로 하며, 그것을 3월 1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훗날 최남선은 회고한 바 있다.


#기독교인 최남선,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


-기독교인 지도자들이 검토하고 수정한 '기독교적 독립선언서'

임희국 교수(장신대)의 '1919년 서울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에 반영된 기독교의 평화'에는 YMCA운동가인 전택부가 "기독교와 천도교 지도자들이 3·1운동에 서로 합류하여 연합하게 된 것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의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성사되었다"면서 이들의 지도력으로 양측의 연합이 이뤄졌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이 때 천도교와 기독교 측을 오가며 연락 임무를 맡은 이가 최남선이었다. 29세 청년 최남선은 독립선언서의 초안 작성을 맡았는데 훗날 "독립선언이란 것이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지 못했기에 3·1운동 독립선언서 작성을 위해 참조한 문헌이 전혀 없었고, 그러므로 이 독립선언서는 완전히 '독창적'이었다"면서도 "나는 대체로 어려서부터 기독교 서적을 많이 읽었고 또 기독교인들과 수시로 상종하는 동안에 자연히 기독교적인 사상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나는 본래부터 자유사상이 농후한 사람인데다가 독립 자유 평등 및 정의와 같은 말이 다 기독교에서 나온 것인 만큼 나에게서 기독교를 빼고서는 나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무엇보다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오세창이 박승봉의 자택으로 가져왔고 그 자리에는 기독교 지도자인 이상재 이승훈 박승봉 세 사람만 있었다. 이들은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검토하고 교정했다. 박철호 교수 (성산효대학원대학교)는 '기독교시민윤리에 의한 3·1독립선언서 분석'에서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의 구별기준을 기독교 사상이라고 말하고, 2·8선언서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기독교 사상이 3·1독립선언서에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 지도자였다.

황홍렬 교수(부산장신대)는 '3·1운동에 나타난 기독교적 정신과 한국교회 선교에 대한 함의'의 글에서 "개신교가 3·1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3·1운동을 개신교가 주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해석했지만 기획단계와 대중화 과정에서 기독교가 기여한 점을 인정했다. 이 외에도 위에 언급된 여러 이유만으로도 3·1운동과 기미독립선언서 작성에 담긴 기독교 정신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 내포된 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연구



-독립 자유 희망 자주권 평화 사상은 기독교 사상이다.

이에 기미년 독립선언서에 내포된 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연구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박철호 교수는 기독교인인 최남선은 기독교 사상에서 최남선의 '비폭력성'을 도출했다고 말한다. 3·1독립선언서에 독립, 자유, 희망, 자주권 의식, 일본을 저주하지 않고 평화적 해결의 원천을 기독교 사상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이덕주 교수도 '3·1운동의 이념과 운동노선'에 관한 연구를 통해 14종의 독립선언서가 직·간접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이뤄졌으며 초기 선언서-기미독립선언서-들에 나타는 비폭력, 무저항, 평화 운동 노선의 확립에 기독교가 영향력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만열 교수는 "성서를 통해 정의 자유 독립과 평등의 이념을 체득한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신앙심의 민족의식을 강화시켰고 민족의식은 신앙심을 더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자유와 평등, 원수사랑과 진보는 기독교시민윤리였다.

백완기 교수는 '성경과 민주주의'에 기독교는 민주주의의 산실이고 민주주의가 원만하게 작동하게 하는 동력으로 설명한다. 3·1운동은 민주주의 국가, 민주공화제를 지향하고 있는데 박철호 교수는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민주주의 성격을 기독교시민윤리적 관점에서 연구한 바 있다. 그는 3·1독립선언서를 기독교시민윤리의 2가지 유형인 자결성(자주성)과 공공성, 그리고 각 유형을 구성하는 4가지 덕목(자유와 평등, 원수사랑과 진보)으로 분석했다.

박 교수는 "자결성은 자유와 평등의 시민윤리 덕목"이라면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포하고 조선의 사람이 자주적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그는 선언서에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유와 평등의 쟁취가 인간의 존엄에 중대함을 직시하고 있다"면서 곳곳에 천부인권인 자유, 평등, 합리주의, 인도주의에 대한 신념과 개인의 자연권 회복을 선언한다고 분석했다."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독립선언서 중) 또한 침략주의, 강권주의를 언급하여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메카니즘을 구시대의 유물로 규정하고 자결성을 정당화한다고 덧붙였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독립선언서 중)

공공성과 관련한 원수사랑과 진보의 덕목에 대해서는 독립선언서 중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었다. 박 교수는 "관용은 타인의 잘못을 인식하면서도 그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독립선언서의 '약속을 배반하였다'하여 자신의 것을 강탈하고 노예처럼 부리면서 인권을 무시한다해서 '죄 주려는 것'도 아니고 '의리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닌 것은 '관용'이 아니라 사랑이고 더 나아가 '원수 사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독립선언서의 하이라이트를 바로 '원수사랑'의 덕목으로 꼽았다.



- 조선의 독립을 하나님의 '평화'로 소망했다

원수사랑은 곧 보복금지, 이웃사랑, 비폭력 등의 덕목과 비교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가 담고 있는 평화사상은 비폭력운동으로 삼국(한·중·일)간 자주독립과 동양의 평화가 연계되어 있으며 힘에 의한 정복을 의지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과 …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펑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독립선언서 중)

이에 대해 임희국 교수는 '1919년 서울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반영된 기독교의 평화'를 통해 독립선언서에 선포된 평화사상을 기독교의 관점에서 파악할 때 구약성서 이사야 11장을 예로 든다. 이사야 11장에 선포된 평화의 세상은 회개와 변화를 촉구한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또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관계가 정의를 바탕으로 각각 자유를 누리고 수평적 평등 속에서 평화의 세계를 추구하라는 말씀이다. 임 교수는 "독립선언서의 작성에 사대부 출신 기독교지도자들이 참여했다는 근거하에 이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두루 파악했을 뿐 아니라 동양평화에 대한 이론도 탄탄히 갖추었음이 분명하다. 독립선언서에 서술된 동양평화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자신들의 평화사상을 그 선언서에 반영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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