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장로회의 3.1만세독립운동
장로교인 1440명, 102개 교회 3.1만세운동 직접 참여
작성 : 2019년 02월 19일(화) 13:30 가+가-
1919년 3.1운동에 앞장서온 기독교는 여러 갈래로 독립운동을 준비했고, 3.1운동의 점화과정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인, 48인 가운데 24인이 기독교인이었고,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인류공존을 지향하는 비폭력적 평화와 보편적 가치관 또한 기독교 이념과 관련돼 있음을 명확히 확인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

역사 학자들은 당시 우리나라 인구 1600만 명 가운데 1.8% 내외의 30만 명의 기독교인이 3.1운동에서 감당한 역할은 전체 활동에서 20% 이상을 차지했다고 분석할 정도다. 특별히 3.1운동에 나선 기독교인의 운동량 또한 주동세력 면에서 25~38%, 체포·투옥 면에서 17~22% 정도를 차지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3.1운동에서 행한 기독교인의 역할은 대략 20~30%로 계량화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3.1운동 가담한 '종교인 3576명' 중 '장로회 교인은 1440명'


1918년 장로회 소속 교인은 16만900여 명, 감리회 교인은 5만1700여 명, 두 교단의 성도만 21만2700여 명으로 기독교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기독교 전체인구는 30만 명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기소 및 재판기록을 통해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종교인은 3576명이고, 그 가운데 기독교인이 1979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기독교인 중에서도 장로회 교인은 1440명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장로회 교인을 1440명으로 보고했다. 더불어 1919년 장로교 제8회 총회 회의록에 기록된 피해 상황을 보면 교회당 파괴는 12동, 장로파 경영학교가 파괴된 곳은 8곳으로 확인됐다. 사살자는 41명, 매 맞아 죽은 자 6명, 체포된 신도는 3804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목사 장로 등 교회 지도자도 134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이와 관련 이치만 교수(장신대)는 한국기독교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1.8%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3.1운동 관련 시위주도 30%, 피체·투옥 20%를 차지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며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장로교 교인 1440명에 주목해야 한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440명의 '그 이름'을 찾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3.1운동의 태동과 장로 교인의 역할

역사학자들은 3.1운동의 출발이 비교적 활동이 자유롭고 국제정세에 대응이 신속한 해외에서 준비되었다고 보고 있다. 해외 독립운동의 흐름이 3.1운동의 모태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를 위한 전체 종교인 가담자 중 40% 이상을 차지한 장로 교인들의 역할과 활동은 3.1운동의 기획과 점화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평양신학교를 중퇴하고 장로교 교회에 출석했던 여운형 전도사는 1918년 8월 중국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결성했고,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회합하는 등의 역할을 감당했다. 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새문안교회에 출석한 김규식 장로는 '105인 사건'으로 중국에 망명해 있으면서도 국내 지사들과 접촉하며 국내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종용했다. 이외에도 양전백 목사, 이승훈 장로, 선우혁 선생 등은 국세 정세에 따른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했고, 유여대 목사, 김병조 목사, 이명룡 장로 등은 민족대화합을 통한 대대적인 3.1운동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함태영 이승훈 장로 등은 기독교를 대표해 천도교와의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총회는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김병조 목사를 상해한인교회에 파송하기도 했다.

임희국 교수(장신대)는 "비록 선교사들은 공식적으로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식민지하 조선인들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려 했으나 복음을 받아들인 교인들은 나라의 운명을 자신의 신앙과 결부하여 독립운동에 직접 투신한 사실을 확증해 준다.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즉 신행일치(信行一致) 기독인의 모습이 확인되었다"며 "3.1만세운동 이전에는 교회의 역할이 지역에서 미미하였는데 3.1운동 참여로 외래종교가 아닌 민족종교로 자리매김하여 더욱 성장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장로교 102개 교회 3.1운동 직접 참여


총회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3.1운동 참여교회 전수조사에 따르면 1920년 이전에 설립된 교회는 433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02개(분열 후 99개) 교회가 직접 3.1운동에 참여했다.

서울 지역에서는 △남대문 △새문안 △안동 △연동 △영등포 교회가 3.1운동에 가담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상심리 △월산 교회가 확인됐다. 충청에서는 △구동 △금당 △종지 △화천 교회, 전라북도에서는 △군산 자곡 △남전 △대장 △무주여울 △전주서문 △제석 교회 , 광주는 △광주기독병원 △광주양림 △광주제일 △수피아여중고, 전남은 △양동제일 △순천중앙 △보성읍 등 13개 교회, 대구는 △남산 △사월 △서문 △대구제일 교회, 부산은 △부산진 △수안 △철마 교회, 경상남도는 △김해 △문창 △욕지 △춘화 교회, 경상북도는 △강구 △상주시민 등 53개 교회, 제주 지역에서는 조천교회가 참여한 것으로 보고됐다. 교단별로는 예장 통합 교회가 77개로 가장 많았고, 예장 합동 21개 교회, 기장 5개 교회 등(기관·학교 제외)으로 나타났다.

이만열 전 교수(숙명여대)는 한 포럼에서 3.1운동과 기독교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장로교의 경우 1907년에 독노회를 조직하고, 1912년에 총회를 조직하는 등 교단을 조직화하였기 때문에 전국적인 연락망을 구축하게 되어 3.1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가 가능했다"며 "특별히 독립방법은 기독교적 성경을 지닌 비폭력성이었고, 평화애호로, 전략적으로도 이것은 많은 사람의 호응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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