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디자인한 세상은 동물이 함께 하는 세상"
동물을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2월특집) 3. 생태적 관점에서 본 동물
작성 : 2019년 02월 20일(수) 15:39 가+가-
돈이란 무엇인가? 종이나 숫자가 실체일 수 있는가. 실체는 자원, 곧 햇살, 공기, 비, 대지와 같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생명 자체인 그들의 시간과 노동의 피땀이다. 곧 모든 것은 소유된 것으로만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인간은 오히려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생태적 관점으로 볼 때와 아닐 때 대상에 대한 이해는 달라진다. 글로벌 경제 안에서 이제 돈은 금리이며, 국가 간 환율이다. 인간은 스스로 없는 것을 세웠다. 예전에 우리는 합법적으로 노예를 부리는 사람이거나 혹은 누군가의 노예였다. 이제는 서로를 눈앞에서 두지 않을 뿐 이것이 다른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연봉 차이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내가 노동한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얻는다. 그 이득은 결국 누군가의 것을 가져오는 것이다. 세계 무역이란 이름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누려야 하는 자원을 가져온다. 그런데 한 사람의 생명과 같은 그의 노동 시간이 계층이나 국가에 따라 그 가치에 차이가 날 수 있는가? 하나님의 것인 땅이 가난한 곳이라고 더 싼 가치가 될 수 있는가? 우리가 들고 있는 만원은 그냥 만원이 아니다. 거기엔 현대판 노예 제도와 타국의 자연이 들어있다. 전 세계인이 한국의 수준으로 생태자원을 소비하고 살려면 지구가 3.3개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구조를 이용해 더 많은 것들을 가져다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 만원은 절대 그냥 내 월급 혹은 투자를 통해 얻은 것의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지구촌 이웃의 생명과 하나님의 소유일 땅이 그 속에, 불공평한 구조로 들어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눈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자본주의 제국의 눈으로 돈을 본다. 자기 이익을 위해 사람이 세운 것을 섬긴다. 우리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위한 개발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바벨탑을 세우듯 소유만 증가하고, 실제로는 증가하는 소유만큼 양극화와 소외계층의 증가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진정한 직면과 고백이 있을 때에야 주님께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에도 바로 이와 같은 약탈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인간이 동물을 소유하는 관점을 자연 법칙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동물혐오다. '낚시'에 사람을 '속인다'는 두 번째 뜻이 있듯, '혐오'라는 단어에도 개인의 혐오감이 아닌 차별의 근원이 되는 사회의 '구조'를 지칭하는 두 번째 뜻이 있다. 이런 구조적 혐오는 어떤 대상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의 문화가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사람이 세운 문화의 힘은 강력한 것이다. 유색인종은 함의 후손이므로 노예가 되는 일이 마땅하다는 해석이 있었다. 인종혐오가 성경적 해석에 영향을 미친 경우다. 위대한 교부 중 한 명인 히포의 어거스틴은 "여성 자체를 놓고 볼 때,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오직 남성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당시의 여성혐오적 문화가 성경적 해석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런 구조적 혐오 중 하나인 동물혐오의 눈으로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반려동물'이라 이름을 붙여 입양하자고 하나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매년 증가하고만 있는 유기동물의 현실에 대한 대책은 부족하다. 육식으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비행기, 선박,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이동수단을 합한 수치를 상회할 정도임에도 인류의 육식은 점점 증가하고만 있다. 이미 축산분뇨는 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인간은 동물과 그들의 서식처를 인간의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실제로 땅이 썩고 있다. 이러한 동물혐오사회는 하나님 나라의 정복이 아니다. 현대인의 육식을 위해 더 많은 땅과 물, 곡식이 낭비되며, 인류가 육식만 줄여도 이미 전 세계의 굶주림이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필요하지 않은 개발에 의해 서식처 파괴와 동물실험 또한 자행되고 있다. 사람들을 위해서라는 핑계 속에서 일시적 소유만 늘어날 뿐, 양극화와 터전의 파괴만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 다스리는 청지기로 세워졌을 뿐이다. 그러한 진실을 직면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고통을 받고 있는 동물들의 자리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동물이란 무엇인가?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자. 대지의 양분은 비에 의해 끊임없이 쓸려가기만 한다. 물질순환은 일방적 흐름이다. 그러나 생태계 속에서 동물들과의 연결성을 통해 물질순환은 하천과 바다에서 육지로 역행한다. 곧 그렇게 회복되는 양분의 양만큼 이 땅 위의 생명의 양은 풍성해진다. 그 자체로 다양성이기도 한 동물들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식물들과 다른 생물들의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모든 존재가 연결된 근원 속에서 서로의 풍성함을 더한다. 그러한 동물의 역할 중에서도 인간에게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다는 것은 절대 인류만의 독특성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또 어떻게 지어져 있는가? 동물들의 아픔과 감정에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 불멸자가 필멸자를 자녀처럼 소중히 여기듯 동물들을 사촌처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육식의 문화와 서식처의 파괴 속에서 우리는 정말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잘 가꿔가고 있는가? 인권과 마찬가지로 동물권 위에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주권이다. 모든 이름의 존재들이 주인의 디자인대로 각각의 풍성함을 이루고 있는가? 생태적 관점에서는 인간으로 인해 동물들의 서식처와 모든 생명이 함께 풍성해지는 것이 주님이 계획하신 풍성함의 디자인이다. 반면 인간이 소유의 주체가 되었을 때는 동물권 조차 인간의 소유 속에 있게 된다. 그때에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디자인을 외면하고 대신 사람이 세운 개발의 디자인을 따른다. 인간의 소유는 과도하게 증가하고 동시에 땅은 썩어간다. 지금 동물들은 정말 어떤 처지에 있는가?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진정한 직면과 고백 이후에야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동물에 대한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박광문

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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